2009.7.20.월요일
하도 성화들을 해서 이번엔 좀 빨리 써 볼려고 했는데 결국 2주가 또 지나갔다. 노무현 대통령 49재 등 바빴던 거 다들 아실 테니 이해하시고, 오늘의 이야기 나가 보자.
필자도 서대문파 기질이 농후한 관계로 갑자기 테크닉으로 튀어볼까도 했었는데, 아무래도 지난 번에 이어 리듬 이야기를 좀 더 해야지 싶다.
지난 번 글 댓글에도 얼핏 나왔지만, 서대문파의 전형적인 모습은 방 바닥에 양반다리 하고 앉아서 고개 푹 숙이고 디스토션 이빠이 걸고는 (일본어 써서 미안하지만 이때는 이 표현 이상 가는 게 없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도 일본어 좀 쓸 테니 그런 줄 아시라) 공포의 초절기교 연습법 같은 데 있는 속주 프레이즈 몇 개 하루 종일 후려 갈기고 있는 거다.
메트로놈은 자유로운 속주에 방해만 되니 사양이고, 되던 안되던 무조건 최고 속도로만 친다. 아무 때나 튀어 나오는 격한 아밍으로 튜닝도 자꾸 틀어짐은 물론이다.
이건 많이 미화된 거고 실제로는 란닝구에 빤스 바람이 다반사.
재떨이에 수북이 쌓인 담배꽁초와 가래침도 필수 아이템.
이러다 보면 내가 하고 있는 게 무슨 조인지, 몇 박자인지, 리듬은 몇 비트인지 아무것도 모른 채 한 마디에 음을 몇번 치고 있는지만 세고 있다. 가끔씩 잘 되는 날에는 아, 이제 내가 속주에는 경지에 올랐구나 싶고 이제 하산해서 세상을 평정하기만 하면 되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고백하마. 필자도 옛날에 여러 번 그래 봤다.
근데 지난 시간에도 말했지만 이래가지곤 오래 못 간다. 드럼 베이스와 리듬 싱크가 전혀 안 되어 있어서 합주하면 혼자 완전 따로 놀고, 녹음하면 이빠이 걸린 디스토션이 지저분해서 들어주지도 몬한다. 그렇다고 디스토션 좀 빼면 피킹 삑싸리는 물론 엉성한 핑거링으로 두두둑 끊기는 음들...
한 마디로 이런 상태는 자기 최면에 불과할 뿐인 거다. 깨어나기 싫어도 언젠가는 깨게 되어 있는.
게다가, 니들이 아무리 죽자고 연습해서 나름 속주의 달인이 된다 한들 스피드로 세상을 떨게 하고 강호를 평정하여 속주 기타의 대마두가 되는 건 어차피 불가능하다. 왜.
아래 비디오를 보면 구구이 설명 안 해도 무슨 말인 줄 알 수 있다. 첫 부분만 보고 이 정도는 나도 언젠가는... 하지 말고 끝까지 다 봐라.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The flight of the bumble bee 다.
요즘 세상에 빨리 친다는 건 이런 거다. 하지만 이런 괴물도 전체 음악계에서 보자면 무명이나 다름 없이 살고 있다. 저넘 정도는 아니더라도 유튜브 잘 찾아보면 귀신 같은 넘들 널렸다. 다시 말해, 아무리 빨리 쳐도 이제 옛날 잉베이나 스티브 바이 같은 위치에는 오를 수 없단 말씀이다.
물론 속주를 하지 말자는 건 아니다. 빨리 치는 건 음악적 표현에 도움도 되고 분명 재미도 있다. 필자는 한때 유행했던 안티 플레잉의 신봉자도 아니고 빨리 치는 넘은 다 쓰레기 같은 일부의 관점에 찬성하지도 않는다.
사실은 이곳을 통해 속주 테크닉을 많이 다룰 것이기 땜에 굳이 이런 이야기를 미리 해 두는 거다. 서대문파로 살아가되, 속도에 지나치게 집착해 다른 걸 다 잊으면 곤란하다는 것. 리듬, 멜로디, 코드.. 이런 게 다 합쳐져 만들어지는 게 음악이라는 사실.
이제 잔소리는 이 정도 하고 리듬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하자.
아는 넘들도 많겠지만 한번 다시 짚어 보면, 서양 대중음악에서 리듬의 기본이 되는 것은 비트(beat)다. 물론 컴하곤 아무 상관도 없고, 기본적으로 가장 짧은 음표가 뭐냐에 따라 결정되는 리듬의 단위다. 예컨대 아래의 초 단순 악보는 8분 음표로 리듬이 분할되어 있으니 8비트다. 록, 하드록, 메탈 쪽의 많은 곡들이 알고보면 이를 기초로 만들어져 있다.
아래는 대표곡이라고 할 하이웨이 스타. 딥퍼플의 앳된 모습과 함께 감상해 보자.
위에서 느낄 수 있듯이 8비트 록의 일반적인 특성은 안정된 펀치력과 묵직한 전진감이다. 잘 쓰면 엄청난 간지가 나기 때문에 메탈리카 같은 밴드가 이 8비트의 특성을 아주 효과적으로 써먹는다.
한편 16비트는 16분 음표를 기준으로 리듬이 분할된 경우다. 역시 록이나 메탈에도 많이 쓰이지만 훵크, 퓨전 등에도 무척 많다. 초 단순 표기하면 이렇다.
아래는 하드록/메탈 스타일의 16비트 곡인 Bark at the moon이다. 8비트의 무게에 비해 위기감이나 긴장감을 만들어 내는데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다. 리듬도 리듬이지만 2분 13초 경과 4분 경의 솔로도 함 눈 여겨 보시라.
마, 장난쳐서 미안하지만 저 신기를 소개하고픈 유혹을 차마 뿌리칠 수 없었다. 난 진짜 기타로는 쳐도 저걸론 절대 저렇게 할 수 없을 것이다.
한편 아래는 16비트 훵키곡인 와일드 체리의 Play that funky music 되겠다. 나중에 또 이야기하겠지만 같은 16비트라도 이건 앞의 곡과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그건 훵크가 가지고 있는 원래의 그루브감 때문이다(근데 50초 부근은 아무리 들어도 박진영의 허니하고 너무 똑같지 않냐...? 복장 보면 알겠지만 당근 이 곡이 먼저).
이렇게 들어보면 알겠지만 비트는 곡의 쟝르는 물론 메트로놈 템포하고는 별 상관이 없다. 하이웨이 스타는 8분 음표로 둥둥둥둥 하고 있으니 8비트인 거고 박앳더문은 16분음표로 자라라라 자라라라, 플레이 댓... 은 띠리리릿 띠리리릿 하고 있으니 16비트인 거다.
이 세 곡에서 공히, 기타리스트는 리듬의 바탕에 철저히 녹아 든 채 곡을 안정감 있게 떠받쳐 주고 있다. 훵키는 그렇다 치고, 하드록이나 메탈 연주자들이라고 해서 절대로 솔로만 잘 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위의 하이웨이 스타나 박앳더문에서 기타리스트가 조금이라도 리듬이 흐트러졌다면 그 결과는 어땠을까. 가뜩이나 대음량에 시끄러운 사운드가 그야말로 조잡한 소음의 향연이 되었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때로 아마추어 메탈 밴드 공연을 보고 있기 힘든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부분이다. 오히려 솔로는 좀 못해도 그 순간만 참으면 되니 애교로 봐 줄 수 있는 거다.
아래를 보면, 어디가 틀린다고 딱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연주의 바탕이 전체적으로 산만하고, 리듬에의 집중력이 부족한 기타 연주가 상당한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한편 아래 연주는 역시 아마추어지만 연륜이 느껴지는 안정된 리듬의 바탕을 유지하고 있다. 덤으로 웃기기까지 하니 금상첨화.
... 사실 리듬을 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닌 정신 자세다. 서대문파의 문제는 성급함과 조바심, 승부욕 같은 것이 기타 연주에 자꾸 끼어든다는 거다. 그러나 리듬은, 아무리 빠른 곡이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느긋한 마음을 유지하고 쳐야 한다. 설사 16비트에서 음표가 아무리 복잡하게 나눠진다 한들 곡 전체의 리듬감을 큰 덩어리로 느끼는 대국적인 자세도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제 아무리 솔로를 잘 한다 한들 리듬을 치는 동안에는 기타도 드럼 베이스와 함께 밴드의 리듬 파트를 담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항상 깊게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반주로서의 기타 연주를 중시하는 백마파의 마음가짐과 여유는 분명히 배울 점이 있다. 단지 손가락이 느리다고 기타 못 친다며 비웃을 일이 아닌 거다.
다음 시간에는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들을 바탕으로 진짜 리듬을 좀 쳐보자.
추신 -
좀 길게 써 덜라는 말이 있었는데, 사실 이전 기타스토리는 이것보다도 훨씬 짧았다. 알다시피 필자는 다른 글도 많이 쓰고, 또 내 경우 기타 글은 이보다 길게 쓸라고 하면 어째 필이 안 꽂히고 부담이 오는 면이 있으니 이해해 주시라들. 대신 다음 편은 가급적 빨리 올리도록 해 보겠다.
딴지 전임 오부리 파토(patoworl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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