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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에서 발굴 된 낙랑군 조선현 사람 한현도의 무덤, 한사군도의 위치는 어디인가?

by 속 아몬드 2015. 3. 23.

중국 베이징 근처에서 1,500년 전 무덤이 발굴됐다. 망자의 묘비에는 이름 한현도(韓顯度) 원적지는 낙랑군 조선현으로 적혀있다. 낙랑군의 위치는 지금의 북한 평양지역이 아니었나? 학계가 술렁이나 보다. 학계와 관계없이 그냥 심심하니까... 낙랑군 조선현(지금의 베이징 근처)에서 살다가 539년에 죽은 '한현도'는 어떤 시대를 살았던 걸까?


기사 - 1500년 전 베이징에 살던 한민족 무덤 발견?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1,500년전 원적(原籍)이 ‘조선현(朝鮮縣)’인 이의 무덤이 발굴됐다. 무덤 주인공이 우리 민족일 가능성이 커 주목된다. 이 무덤에서 나온 벽돌모양 묘비에는 무덤에 묻힌 이가 ‘韓顯度’(한현도ㆍ중국어 한셴두)이며, 원적이 ‘낙랑(樂浪)군 조선현’이라는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었다. 서기 539년이다. 


중국 매체들은 무덤 주인공의 원적인 ‘낙랑군 조선현’에 대해 “낙랑군은 한무제(漢武帝)가 기원전 108년 고조선을 평정한 뒤 지금의 한반도 내 설치한 사군(四郡) 중 하나이고, 조선현은 지금의 평양시”라고 주장했다. 이어 중원 왕조들의 힘이 쇠약해지면서 313년 낙랑군이 고구려에 의해 ‘탈취’당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한사군이 존속한 기간은 25년에 불과했고 가장 오래 남아있던 낙랑군도 사실상 상업적인 무역기지로서 명맥만 유지됐다는 게 우리 학계 입장이다. 중국이 이런 낙랑군을 강조하는 것은 ‘동북공정’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냔 지적이 나온다.


‘조선민’이 강제 이주됐다 해도 그들이 수백년 전 사라진 낙랑군을 굳이 원적지로 썼다는 건 설득력이 약하다. 오히려 1,500년전 우리 선조들이 베이징까지도 활동 무대로 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유적일 수도 있다.


기사 출처 - http://epaper.jinghua.cn/html/2015-03/17/content_178171.htm

한국일보 http://www.hankookilbo.com/v/21717baee16f438192bb820e0d2c7f28



한현도는 539년에 죽었다. 무덤의 규모로 보아 일가를 이루고 후세를 꽤 두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여 넉넉하게 잡아 그가 50년을 살았다고 가정 해 본다. 한현도는 490년 경에 태어났다. 490년은 북위(남북조시대의 북조)의 문명황후(文明皇后)가 죽은 해이다. 문명황후는 466년 부터 490년 까지 수렴청정하였던 시기다. 문명황후가 죽자 효문제는 수도를 평성(平城 지금의 산서성 대동)에서 낙양(洛陽)으로 천도 후 대대적인 한족화 정책을 추진했다. 황실의 성씨을 원씨(元氏)로 고치고, 구품관인법(九品官人法)을 부분 채용하여 남조(송)를 모방한 북조 귀족제도를 만들었다.


지도 출처 - 위키디피아


선비족이 세운 북위는 내부적으로 선비족의 풍습을 지키려는 세력과 선비족의 풍습을 버리고 한족화를 진행하려는 세력의 다툼이 지속적으로 일어났는데, 효문제 사후 523년 한족화 정책에 반발하는 '육진의 난'이 일어나면서 결국 북위는 멸망하고 534년 동위와 서위로 분열된다.


한현도는 역사적으로 그리고 지리적으로 선비족이 세운 북위의 변방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선비족의 풍습이 조금씩 사라지는 시대를 살다 죽을 때는 동위에서 죽었다.


자, 그럼 시선을 돌려 고구려로 가보자. 한현도가 태어난 490년은 광개토대왕의 맏아들 장수왕이 고구려의 영토를 풍선 불듯이 팽창시켰던 시기다. 당시 고구려의 최대영토가 북경에 다다른다는 견해도 있지만 가장 널리 통용되는 고구려영토는 아래와 같다.




한현도가 살던 북경 근처까지 고구려의 세력이 잠시 확장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지속되었다고 판단하는 건 무리가 있다. 한현도는 분명 낙랑군 조선현에 살던 사람이다. 고구려의 영역과는 관계없지만 위만조선의 영역과는 매우 관련이 깊다. 낙랑군의 위치가 지금의 북한 평양이라는 게 한중일 역사학자들의 정설이었다. 한국에 식민사학 말고 한국사를 연구하는 학자가 몇이나 있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위만조선과 한의 경계를 우리 머리속에서 조금 왼쪽으로 수정해도 되는거 아닌가 생각해 본다. 사실 이와 관련된 주장은 몇몇 국사학자들로 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되었고 2012년에는 요나라의 역사서 <요서>가 국역되면서 이슈가 되기도 했었다.




한사군도가 한반도가 아니라 중국 대륙에 있었다는 주장이다. 한현도의 묘비에 원적지가 낙랑군 조선현으로 새겨져 있었다면 위 이미지의 주장은 설득력을 갖는다. 한 발 나아가 현 중국의 수도인 북경이 과거 옛 조선의 영역이었다는 것이다.


한현도 비문의 등장으로 한사군도의 위치에 대한 논쟁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전국민적인 요동사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만약 2016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낙랑군을 비롯한 한사군도의 위치에 관한 문제가 나오고 정답이 예전 그대로라면... 1500년 전 한현도의 무덤 발굴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냐?(비정상회담 호주대표 블레어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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