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주기 전야 광화문은 고요했습니다. 설마 다음날 경찰이... 대한민국 권력이... 아이들 떠난 지 1년을 맞이하는 날 유가족에게 그런 모욕을 주리라고는...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던 4월 15일 밤, 광화문 광장입니다. '다시 봄,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한국작가회의 주최로 시낭송과 노래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노래하는 나들(우측부터 문진오, 김가영, 신재철) 세월호 참사 전부터 서울광장과 광화문 청계광장에서 꾸준히 노래하는 팀입니다. 문진오 씨의 태산같은 울림은 맛볼 수 없는 공연이라 아쉬웠습니다. 그의 노래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니 오해 마시길... 선곡에 대한 작은 아쉬움일 뿐입니다.
도종환 시인이 단원고 2학년 6반 이건계 학생을 대신하여 그의 가족에게 영혼으로 쓴 편지를 낭독합니다. 이건계 학생의 편지에 유가족은 마른 눈물을 또 쏟아내고 참석한 시민들은 물론 이순신, 이도도 울었습니다. 길더라도 한번씩 읽고 가실께요.
녹색편지
집 앞에 있는 산수유나무에 노란 꽃망울이 맺혔네요. 산수유 빨간 열매는 추운 겨울을 견디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산수유 나뭇가지에 앉았다 날아가는 참새들 목소리가 더 커졌네요. 꽃샘추위가 지나가면 봄은 더 가까이 오고 하늘은 더 파래질 거예요.
계단을 걸어서 오백육호 우리 집에 가보았어요. 엄마 사랑하는 우리 엄마 부엌에 계시네요. 작년보다 등이 조금 더 굽어보이네요. 만지고 싶은 엄마 등. 얼굴을 기대면 볼 전체가 따뜻해지는 엄마 등이 보이네요. 아빠, 거실에 계시네요. 믿음직한 우리 아빠. 나를 정직하게 하는 아빠. 든든한 아빠 거기 계시네요.
내 방은 누나 방이 되었네요. 더 깔끔해졌네요. 내옷은 그대로 걸려 있고 옷 위에 파란색 보자기 덮여 있고, 내 사진도 그대로 있고, 『수학1의 정석』 옆에 『눈먼 자들의 국가』라는 책이 있네요.
내 침대는 아빠 방으로 갔군요. 하늘색 코뿔소 인형은 거기 있군요. 여자 친구와 인형뽑기를 해서 뽑은 인형. 동글동글하고 큰 눈은 아직도 두리번거리며 나를 기다리고 있네요. 아빠가 앉아 있는 거실에 못 보던 책이 있네요. 『금요일엔 돌아오렴』그래요. 우리가 돌아와야 할 날이 금요일이었지요.
아무래도 내 영혼은 누나 방에서 잠시 쉬어가야겠어요. 보고 싶은 누나. 애인 같은 누나.
누나가 여섯 살, 내가 세 살 때였던가요? 자다 깨어 울던 나를 꼭 끌어안고 다독여주던 착한 우리 누나. 그때처럼 누나가 내 영혼을 꼭 안아주면 좋겠어요.
누나. 보고 싶은 누나.
가난했지만 이 세상에서 우리 네 식구가 가장 정다웠잖아요.
아빠는 누나를, 엄마는 나를, 우리는 우리를, 얼마나 사랑했었는지 우리가 제일 잘 알잖아요.
누나한테 달려가 옷 사달라고 조르고 싶어요. 엄마한테 고소한 커피 한 잔 타 드리고 싶고요.
아빠 티셔츠 꺼내 입고 집 앞 예츠 피자에 피자 주문한 거 찾으러 달려가고 싶어요.
엄마 팔 베고 누워 있고 싶어요. 엄마 무릎에 누워 귀지 파달라고 하고 싶어요.
사고가 난 뒤
아빠가 바지선 근처까지 오시고, 엄마가 “건계야! 빨리 와”하고 내 이름을 부를 때 파도가 실어다 주는 엄마 목소리를 들었어요. 내가 마지막으로 내 몸을 솟구쳐 올린 것도 그때였어요.
지금 아니면 영영 엄마와 누나를 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내 몸을 들어 올렸지요.
그때처럼 엄마와 누나 있는 곳으로 달려가고 싶어요, 내 영혼은.
수학여행을 떠나던 날 밤 12시 41분
"자냐 아들?" 하고 문자를 보냈을 때 답장을 못한 게 아직도 제일 마음에 걸려요.
사월이 가고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이 오는데 엄마에게 답장을 보낼 수 없어 죄송해요.
사진을 많이 찍어오기로 했는데. 한라봉을 사오겠다고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미안해요.
녹색 모자를 쓰고 사진을 찍어 보내드리고 싶었는데... 녹색.
내가 좋아하던 녹색은 그만 검푸른 바닷물에 녹아 없어지고 말았어요.
저를 많이 많이 사랑한 엄마.
나도 정말 엄마를 사랑해요.
옛날처럼 엄마 입에 뽀뽀하고 싶어요.
엄마를 사랑하는 내 마음을 입맞춤에 담아 보내드리고 싶어요.
아빠, 내가 세상에 태어날 때 심장기형이라 100일이나 병원생활을 하며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 때 아빠가 아니었으면 나는 열여덟 해를 살지 못했을 거예요. 그때 갓 낳은 나를 안고 아빠가 불러주시던 노래들 영원히 기억할게요.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라 오너라. 노랑나비 흰나비 이리 날라 오너라.”
그 노래 들으며 내 귓속에 들어오던 노랑나비 같은 숨결, 흰나비 같은 생명의 맥박을 영원히 간직할게요.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 아기 잘도 잔다." 하고 불러주시던 노래.
그때처럼 아빠가 노래를 불러주시면, 아빠의 노래 곁에 숙면하는 영혼으로 있을게요.
엄마가 빨래를 개면서 사는 게 힘들어 우실 때 "엄마 소리 내어 크게 우세요."라고 말했던 거 기억나세요?
엄마 힘들면 소리 내어 크게 우세요. 엄마 나도 소리 내어 크게 울고 싶어요. 엄마, 아빠, 누나와 떨어져 혼자 있는데 어떻게 울지 않고 견딜 수 있어요. 나 혼자 많이 힘들었어요.
그래서 장환이 손 꼭 잡고 있어요. 장환이가 내 옆에 있고 내가 장환이 옆에 있어서 다행이에요.
지난번에 경호가 너무 슬프게 우는 걸 보았어요. 장환이, 경호, 나 우리는 단짝이었어요.
미술학원에서 만난 친구들 모두 모두 보고 싶어요. 그 애들과 그림도 더 그리고 재미있게 지내고 싶었어요.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나는 참 좋았어요. 마음껏 상상하고 표현하고 푸른 하늘 가득 내 꿈을 그려 넣고 싶었어요. 두 손으로 녹색 도시를 떠받치고 있는 그림을 그렸었지요. 내가 좋아 하는 녹색으로 내 나머지 생을 칠하고 싶어 이곳에서도 계속 그림을 그릴까 해요. 사월에는 뒷산으로 세밀화를 그려서 보낼게요. 봄에는 동네 등나무에 색칠을 하고, 가을에는 아파트 입구 은행나무 잎에 황금색을 반짝반짝 칠할게요.
봄 사월. 어린잎에 연둣빛이 은은히 감돌면 제가 다녀간 줄 아세요.
느티나무 잎이 붉게 물들어 빛깔 고우면 제가 색칠을 하고 있는 줄 아세요.
까치집 둥지에도 가만히 앉았다 가고, 우듬지 끝을 흔드는 바람에 섞여 다녀가기도 할게요.
누나가 나대신 엄마에게 얼마나 자주 전화 하는지 볼게요.
가만히 있다 눈물을 주르르 흘리곤 하는 아빠를 누나가 얼마나 자주 안아드리는지 볼게요.
엄마와 아빠가 서로를 얼마나 위로하고 사랑하는지 창문으로 들여다보곤 할게요. 내가 좋아하는 녹색 양말을 신고 녹색 모자를 쓰고 가만히 왔다가곤 할게요.
아, 그리고 무엇보다 살을 뺄게요. 엄마가 계속 걱정 할까봐 안 되겠어요.
그리고 내년쯤엔 아빠와 마주앉아 아빠가 주시는 술 한 잔 마시고 싶었는데 그게 가능했으면 좋겠어요.
보고 싶은 누나! 내 인생의 멘토 이지연!
누나가 시인이 되는 걸 보고 싶어요. 누나가 아름답게 사는 걸 보고 싶어요. 그러면 내 영혼은 자주 누나의 방을 두드릴 게요. 엄마와 아빠와 누나와 친구들이 나를 기억해 주는 동안 나는 아직 살아 있는 거예요.
기억하는 게 사랑하는 거예요.
기억하는 게 나를 살아 있게 하는 거예요.
그러면 나도 바람으로 다가가고 별빛으로 반짝이며 있을게요.
엄마가 제 가슴에 새겨준 문자처럼 사랑해요 많이 많이 사랑해요.
내가 드릴 수 있는 마지막 말
엄마, 아빠, 누나 사랑해요.
엄마 아빠로 인해 이 세상에 왔던 날 저녁
건계 올림
대신 쓴 이 도종환
참여시민들에게 나눠 준 '다시 봄,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소책자에 실린 한 줄 소원문 몇개 옮겨적습니다.
맨살에 닿는 슬픈 소금기마저 기억하고 싶습니다 - 이범근(시인, 교사)
304명은 몇 명입니까, 도대체 몇 명입니까 - 황정은(소설가)
그 봄의 이름을 반드시 찾겠습니다 - 김선우(시인)
이름을 부르는 사이 꽃이 스든다 - 여경(비정규직 노동자0
푸른 무덤에 꽃 대신 약속들을 내려놓는다 - 박시하(신인)
슬픔을 위로할 수 있는 건 오직 진실뿐입니다 - 김대현(평론가)
오냐 나여 그래도 잠은 또 오겠구나 - 김사인(시인)
우리 모두가 작은 세월호였다 - 송경동(시인)
만삭의 바다는 잠들지 못합니다 - 김명은(시인)
진실이, 미래다~ - 황규관(시인)
아, 이 공기, 숨 쉬기도 미안한 4월 - 함민복(시인)
아직 돌아오지 못한 세월호 참사 실종자 아홉분의 이름과 얼굴을 새긴 판화입니다. 단원고 조은화, 허다윤, 남현철, 박영인, 양승진 선생님, 고창석 선생님, 권혁규 군, 권재근 님, 이영숙 님. 작년 청계광장에서 수많은 시민들과 유가족이 목놓아 불렀던 이름들이지요. https://youtu.be/FzMLR2EAJSc?t=7m52s
판화 속 얼굴은 웃고 있지만 차마 우리는 같이 웃어주지 못하는 세상에 살고 있네요.
'사진과 섞인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JBL 스탠딩 스피커, 가성비의 끝판왕 JBL ES80BK 4-Way Floorstanding Speaker (0) | 2015.05.15 |
---|---|
SONY SS-CS3 스탠드 스피커, 가성비의 제왕 소니 스피커 (2) | 2015.05.07 |
광화문 광장에 사람 모이는 걸 두려워 하는 박근혜 정권, 박정희 아니 일제식민지 때냐? (0) | 2015.04.07 |
공원에서 막걸리로 목을 축이며 바둑 두는 어르신 (0) | 2015.03.29 |
서강동 예찬길 마을축제, 골목 축제의 모범답안 (0) | 2015.03.2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