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제4편
16장 정이 지나쳐도 미치는가
/마을 형편이 우습게 돌아가고 있는 것을 김훈장도 눈치채었다. 소를 못 먹여서 소 장에 몰고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남의 눈을 피해 쌀밥을 먹는 사람이 있었다. 기야! 니 하늘 안 무섭나? 오뉴월에 허연 쌀밥을 묵다니 하고 두만아비가 말했다지만 봉기는 어쩐지 살림이 괜찮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오뉴월은 흔히 말하는 보릿고개를 이르는 시기다. 내가 살면서 겪은 배고픔은 없지만 보릿고개는 들어 익히 알고있다. 그런데 오뉴월에 하얀 쌀밥을 먹는 다는 건 천벌 받을 일이라고 생각을 했다는 건가... 망치로 머리를 맞는듯 했다. 물론 이건 소설이고 박경리 선생의 개인적인 가치관의 반영일 수도 있다. 쌀밥이 아니라 돼기고기 소고기도 남겨 음식물 쓰레기가 되는 시대인데 "니 하늘 안 무섭나?" 질문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자문하면 다 죄인이다.
내가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때와 지금은 다르지만 그때도 맞고 지금도 맞는 건 여전히 배고픈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때는 이웃의 배고픔을 알고도 쌀밥을 먹으면 하늘을 무서워 했는데 지금은 국가의 복지제도를 믿고 그저 세금만 내면 내 할 일은 했으니 죄책감을 가질 이유도 여유도 없는 시대다. 고작 100년 남짓 지났는데 자본주의(화폐)가 우리의 공동체를 얼마나 황폐하게 만들었는지 "니 하늘 안 무섭나? 오뉴월에 허연 쌀밥을 먹다니..." 이 한 문장으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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