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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Album 속 아몬드

김현식 - 2013년 10월 미발표 모음곡,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나봐...

by 속 아몬드 2013. 11. 7.

1990년 11월 1일 그가 떠나고... 많은 이들이 아파하고 아쉬워 했지만... 지방의 초딩에게까지 그의 영향력이 미치진 않았다.

그러나 한 음악인의 죽음은 얼마지나지 않아 지방의 초딩들까지 내사랑 내곁에을 따라부르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1992년 1월 15일 살아 생전에 못해본 가요톱10 1위를 한다. 이때 대신 방송에 나와 노래를 부른 사람이 있었는데... 최민수다. 요즘 배우의 삶 보다는 음악, 가죽공예가의 삶을 살고 있는 그 섬세한 터프가이 최민수 말이다.


최민수가 살아생전에 김현식과 어떤 친분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최민수가 김현식의 노래를 꽤 잘 부르는 사람이라는 건 안다. 따라부르는게 아니라 그 느낌을 안다랄까... 김현식 그의 이름 석자를 떠올리니 가장 처음 생각나는게 이런거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 나는 김현식을 알게 되었고... 적당히 빠진게 아니라 깊이 빠졌다. 초등학생이었지만 김현식으로 촉발된 나의 음악적 감수성은 곧 시인과 촌장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당시는 뉴키즈언더블럭이 유행하던 시절이고 신승훈으로 대표되는 발라드와 트로트가 공존하던 시기였다.


그의 음성은 초딩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만큼 매력이 있었다. 이후 통기타를 배우게 되고 어느정도 기타를 치게 되었던 고등학교 시절 축제 무대에서 김광석의 일어나, 사랑했지만이 유행이었지만... 나는 비처럼 음악처럼을 불렀었다. 따지자면 김광석의 응축된 힘보다는 김현식의 흐트러진... 폭풍같은 바람이 더 매력적이었다. 보컬리스트로 평가하자면 김광석이지만... 음악인의 아우라는 김현식이다. 공통점이 있다면 둘 다 서른셋에 생을 마감했다는 아쉬움이다.


이번에 발매된 김현식 <2013년 10월>은 미발표 및 병상에서 재녹음 된 곡들로 채워져 있다.



     



그의 곡들은 특정 타자의 화법을 빌리거나 자신의 감정을 부풀리거나 또는 매끈하게 꾸미려는 얄팍한 수가 보이지 않는다. 그냥 자신의 이야기를 쓸쓸한 목소리에 담아 토해낸다. 김현식의 영원한 테마는 사랑이다. 가을 나그네와도 같은 사랑... 사랑이 필요 없다거나 하루만 달라거나 하는 요즘 애들 노래와는 다르다. 요즘 노래들처럼 토할만큼 느끼하고 불량식품 처럼 달달하고 10대 소녀의 일기장 같이 유치한 말랑말랑한 노래를 기대하지 마라. 다만 지친 사랑의 감성을 토해 내려는 안쓰러운 그가 일관된 음성으로 음반을 채우고 있을 뿐이다.


그의 이번 음반을 별 2~3개로 평가하는 쓰레기들을 네이년 사이트에서 봤다. 음악적으로 수준이 떨어진다나? 기타가, 피아노 연주가 엉망이라나? 음악의 근본도 모르는 새퀴들... 이 음반이 정규 앨범이냐? 병상에서 녹음된 미발표된 곡들이다. 그가 간경화로 떠나지 않았다면... 아니 조금만 더 살았다면 이 음반의 곡들은 정규 앨범으로 나왔을테고 지금쯤 명곡의 반열에 오른 곡들이 수두룩 할터다.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와서는 화끈한 CG액션 장면이 없어 재미없었다고 하지 그러냐? 다른말은 다 집어 치우고... 앞으로 김현식이든 유재하든 그게 누구든 미발표 모음곡집이 발매 된다면 감사히 별 다섯개인거다. 우리를 아프게 하고 떠났지만 그들에겐 영원히 이런 특혜를 누릴만한 이유가 대한민국의 머릿수 만큼이나 많다.





김현식 - 2013년 10월


1 외로운 밤이면 작사 김현식 작곡 김현식 편곡 유해준


2 그대 빈들에 작사 김현식 작곡 김현식 편곡 유해준


3 나루터에 비 내리면 작사 김현식 작곡 김현식


4 다시 처음이라오 작사 이승희 작곡 김현식 편곡 유해준


5 사랑의 불씨 작사 김현식 작곡 김현식 편곡 유해준


6 빗속의 연가 작사 김현식 작곡 김현식 편곡 유해준


7 바람인줄 알았는데 작사 양인자 작곡 김현식 편곡 유해준


8 수 작사 김현식 작곡 김현식 편곡 유해준


9 Rain 편곡 유해준


10 비오는 어느 저녁 작사 김현식 작곡 김현식


11 사랑했어요 작사 김현식 작곡 김현식


12 어둠 그 별빛 작사 정성주 작곡 김현식


13 눈 내리던 겨울밤 작사 김현식 작곡 김현식


14 이 바람 속에서 작사 김현식 작곡 김현식


15 나는 바람 구름 작사 김현식 작곡 김현식


16 지난 가을에 작사 김현식 작곡 김현식


17 우리 이제 작사 김현식 작곡 김현식 편곡 유해준


18 내사랑 어디에 작사 김현식 작곡 김현식 편곡 유해준


19 너를 기다리며 작사 김현식 작곡 김현식


20 나 외로워지면 작사 김현식 작곡 김현식


21 떠나가 버렸네 작사 김현식 작곡 김현식





나는 저 태양을 두려워하지 않았네 - 김현식의 미발표 유작에 부쳐

강헌(음악평론가)


모든 예술가의 때이른 죽음이 신화가 되지는 않는다. 그 죽음이 예술적 정점의 9부 능선쯤에서 일어났을 때 요절의 신화는 가장 찬란한 빛을 뿜으며 사라져가는 아름다움이 단숨에 완성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유재하의 죽음은 너무 일렀고 김정호의 죽음은 정점에서 조금 지나간 시점에서 일어났다. <0시의 이별>과 함께 스물 일곱 살의 나이에 타계한 배호의 요절이 첫 번째 신화의 탄생이라면 그로부터 19년 뒤인 1990년 11월 서른 셋의 나이로 세상과 작별을 고한 김현식은 유작 <내 사랑 내 곁에>의 전설적인 성공을 동반하며 한반도의 남녘을 뒤흔든 이 신화의 극점이 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음악가들의 죽음은 공교롭게도 모두 11월에 일어났다. 


김현식의 신화는 한국 언더그라운드의 봉기라는 개념과 동의어다. 그의 성공과 함께 한국 대중음악사는 언더그라운드라는 황홀한 비경을 맞이하게 되었고 그의 죽음은 이 영광의 연대기의 종언을 의미했다. 그가 등장하기 전까지 한국의 대중음악은 천민적인 음반산업 자본과 매스 미디어의 입맛에 따라 운명이 좌지우지 되는 사실상의 노예의 신분에 지나지 않았다. 뮤지션의 예술적 자율성은 70년대의 김민기와 한 대수의 경우처럼 권력과 시장에 의해 저주의 대상이 될 뿐이었으며 조용필 같은 80년대 슈퍼 스타마저 최근까지의 저작권 논란이 말하듯이 자신의 음악의 주인이 되지 못했다. 


70년대 청년문화의 대표적인 상징 중의 하나인 이장희의 프로듀스로 데뷔한 김현식은 한국 언더그라운드의 대장으로 불리게 되는 김영이 수장으로 있는 동아기획과 조우하면서 한국 대중악가가 자본과 미디어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예술적 판단으로 표현하는 자유예술가의 시대로 접어들게 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한국 대중음악계의 지형도 자체를 근본적으로 전복시킨다. 그는 동아기획의 쌍두마차 들국화와 더불어 (물론 이들 열혈 음악청년 뒤엔 조동진이라는 한국 언더그라운드의 정신적인 맏형이 든든하게 뒷받침하고 있었다) 콘서트와 음반 그 자체만으로도 대중과 만나고 시장의 성공을 일구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오만하게 증명했다. 방송사의 PD들은 당황했고 새로운 변화를 기대했던 젊은 수용자들은 환호했다. 


김현식이 분만한 일련의 상황은 1980년대 한국대중음악이 엄청난 외연의 확장을 가져왔다는 점, 그리고 ‘동아기획’이라는 이름의 음반산업의 기획능력이 주류 네트워크가 지배해 왔던 기존의 생산/소비의 패턴을 우아하게 조롱했다는 점은 명백하다. 그러나 이 ‘언더그라운드’의 돌풍은 익히 알고 있다시피 저 서구의 60년대 세대들이 일구었던 도전적인 문화 담론에까지 다다르지는 않는다. 거대한 자본주의의 이념적 동요를 맞이한 60년대의 서구 젊은이들은 사회적 통제의 조직과정과 기존 가치의 개념, 그리고 전통에 대한 지속적인 반란을 꿈꿀 수 있는 자신들만의 문화공동체를 꾸리기 시작한다. 사회적 항의를 위한 청년인텔리들의 토론집회, 블랙 파워, 히피들의 공동생활촌 등이 이들의 문화적 거점이었으며 이 속의 젊은이들은 진정한 두려움으로 여겼던 계시적인 시한폭탄이 터지기 전에 그리고 30세가 되기 전에 그들의 부모와 교회, 그리고 정부가 요구했던 삶의 양식에 반하는 모든 경험을 가져보기로 작정했다. 


이들은 약물이 제공해 주는 강렬한 감정적 고양을 통해 새로운 현실 인식을 가로막는 문을 부숴뜨리려고 노력했고, 흐르는 시간을 멈추어 놓고 순간의 경계 위에 전적으로 존재하고 싶어 했으며 이성의 감옥 속에서 감각의 세계로 자신을 해방시키려고 했다. 또한 젊은 흑인들은 백인 세계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고 인종적인 대안을 제출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피부색의 차별성을 막론하고 이들의 주안점은 자발성에 기초해 있었으며 원리원칙으로의 복귀와 개성에 대한 성찰, 경쟁보다는 화합의 정신이 혼용되어 있었던 것이다.


신군부로 요약되는 80년대의 억압적인 한국의 정치적 상황은 한국의 대중문화가 이와 같은 총체적인 저항의 자유를 허용할 리 만무했다. 이들은 여전히 공연윤리심의위원회를 통한 사전 검열로 표현의 자유를 구금하고 있었고 향정신성 의약품에 관한 법률로 예술가들의 몸부림을 적극적으로 단속한다. 김현식 또한 앞의 유구한 선배들이 밟아갔던 것처럼 첫 번째 성공을 거둔 직후 대마초 사범으로 구속된다. 곧 풀려나긴 했지만 그는 밴드의 멤버들을 잃었고 무엇보다도 이 사건을 계기로 마약 대신 알코올에 탐닉하면서 치명적인 건강의 손상을 부르게 된다. 


김현식은 고등학교를 중퇴한 십대 후반 이후 좌충우돌의 파란만장한 터널을 통과해야 했다. 그는 서른 세 해의 짧은 일생 동안 아들 완재를 얻고 이촌동에 작은 피자 가게를 운영했던, 여유 있지는 않았지만 행복했던 짧은 결혼 초기의 시간을 제외하면 평온한 순간을 가지지 못했다. 격렬한 에너지로 점철된 그의 젊은 날의 삶은 자유분방하고 거친 그의 음색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그것은 단지 블루스, 발라드에서 로큰롤에 이르는 광활한 그의 음악적 스펙트럼을 관통하는 본령은 단연 블루스일 것이다.


그가 떠난 지 이십삼 년이 속절없이 흘렀고 그가 남긴 여섯 장의 정규 앨범의 목소리들은 지금도 여전히 낡지 않고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웅혼하고 신선하게 들려온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 병상에서 남긴 마지막 목소리들이 문득 옛 기억을 일깨우며 우리 앞에 배달되었다. 그가 병석에서 기타를 치며 부른 <그대 빈들에>는 그의 출세작인 2집의 <바람인 줄 알았는데>로부터 3집의 <비오는 어느 지녁>, 4집의 <한밤중에> 그리고 신촌블루스의 2집 <바람인가/빗속에서>, 5집의 <넋두리>로 장구하게 이어지는 김현식 표 블루스의 최종 완결판이다. 그의 목소리는 초의 마지막 불꽃처럼 세상과 이별하기 직전의 뜨거운 회한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 노래는 마치 천국에서 보내온 김현식의 편지를 뒤늦게 발견하고 읽는 기쁨과 슬픔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타계 23주년을 맞아 그와 영광을 함께 했던 동아기획의 수장 김영이 그의 마지막 육성에 반주 파트를 덧붙여 발표한 이번 유작 모음집은 모두 아홉 개의 미발표 트랙을 담고 있으며 1996년에 7집으로 발표했던 미발표 트랙 모음에 실린 <사랑의 불씨>와 <다시 처음이라오>, <이 바람 속에서> 그리고 호세 펠리치아노의 노래를 커버한 을 다시 다듬어서 추가했다. 나머지 여덟 곡은 정규 앨범을 통해 발표했던 노래들을 병상에서 부른 넘버들이다. 


모든 욕망으로부터 벗어난, 투명하다시피 스산한 내면의 풍경을 보여주는 발라드 <나루터에 비 내리면>은 이 앨범의 또 하나의 백미다. 김현식의 노래를 들으며 성장했던 그 때의 젊은이들은 이제 힘겨운 중년이 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승을 떠난 그나 아직 질긴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우리들이나 그 운명이 그리 다르지 않음을 이 노래를 통해 이십삼 년 전의 김현식은 그다운 어투로 얘기한다. 


또 하나의 미발표작 <외로운 밤이면>은 그에게 명성을 가져다 준 슬로우 템포의 록 넘버 <어둠 그 별빛>이나 <비처럼 음악처럼>을 좋아하는 팬이라면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한 노래다. 가을비까지 내려준다면 금상첨화!


이 앨범을 주욱 따라가다 보면 이 음반이 그저 그런 미발표 유작전이 아님을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노래 하나 하나엔 절멸의 마지막 벼랑에 선, 죽음 앞에 작아질 수밖에 없는 숙명을 짊어진 젊은 가객의 혼이 마지막으로 비상한 빛을 줄기차게 뿜어내는 것이다. 


이 앨범엔 1980년 데뷔했던 시기의 풋풋한 청년의 내음과 그를 불후의 존재로 만드는 데 마지막 방점을 찍은 <내 사랑 내 곁에>가 담긴 1991년의 여섯 번째 정규 앨범이자 유작의 향기까지 아니 데뷔 이전의 음악 소년 시절의 치기 어린 표정까지 주마등처럼 펼쳐진다. 특히 이 앨범의 막바지에 수록된 <내 사랑 어디에>룰 보라. 통기타의 여음 속에 솟아 오르는 젊음을 향한 약동의 짧은 후렴구는 그가 아직 70년대 통기타 포크 음악 문화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던 데뷔 시절의 에너지가 시간을 거슬러 극적으로 재현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이 앨범의 마지막 트랙이 데뷔 앨범에 담겼던, 저 1980년의 <창밖의 여자>와 <단발머리>를 앞세운 조용필 열풍 아래 사장되었던 비운의 명곡 <떠나가 버렸네>로 마감하는 것은 절묘한 트랙 편집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 그는 자기 맘대로 살다간 사람이다. 그는 오만하리만치 자신의 청중 이외의 어느 누구를 위해 노래를 부르지 않았고 저 1960년대의 마침표를 찍은 우드스탁의 풍성한 자유로움을 죽기 직전까지 동경했으며, 아마도 지금 천국에서 그들과 지음을 나누고 있을 지도 모른다. 뭔가 맘에 들지 않으면 주먹을 휘두르기도 했고 마약으로 감옥 신세를 지기도 하면서 그리고 급기야는 술로써 그 자신을 서서히 무너뜨려 갔다.


이러한 자기 학대 속에서 세상의 규범으로부터의 소외의 목소리가 배태되었다. 그가 생각했던 소외는 계급적인 소외가 아니라 사랑의 소외였다. 그는 끊임없이 규격화와 질서화를 요구하는 세상의 요구에 대해 참을 수 없는 반감을 노래를 통해 표현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의 대부분의 노래는 사랑에 관한 것들이지만 거의 예외없이 그것들은 사랑의 기쁨이나 아름다움, 행복함에 대해서가 아니라 사랑의 좌절 이후의 고독과 상처의 쓰라짐으로 일관되어 있다. 갈라지고 탁한, 절규하는 듯한 그의 목소리는 따라서 이와 같은 세상에 대한 그의 반감의 몸짓으로 느껴진다.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이 한국 언더그라운드 신화의 기폭제가 되었다면 김현식은 이 신화의 완성자이다. 그리고 빨리 찾아온 그의 죽음은 바로 그 폭풍을 마감하는 구두점이 되었다. 김현식의 가장 큰 공적은 보컬리스트로서 전통적인 트로트의 감수성에 기대지 않고 서구 대중음악의 대표적인 장르 대부분을 정면 돌파함과 동시에 그것들을 한국 대중음악의 문법 속으로 완벽하게 녹여버린 데 있다. 그는 70년대의 유산인 포크음악로부터 록과 록에 기반한 발라드, 그리고 무엇보다도 블루스와 재즈 퓨전에 이르기까지 자유자재의 소화력을 과시했다. 바로 이 소화력이 그로 하여금 유재하로부터 그의 밴드 동료였던 봄 여름 가을 겨울이나 빛과 소금에 이르는 위대한 후배 뮤지션들이 그를 구심으로 집결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엄인호와 이정선, 한영애 같은 선배 동료들과 함께한 한국 블루스 음악의 자궁 신촌블루스 의 활동 또한 김현식의 위대한 족적이다. 김현식은 조동진 사단과 더불어 한국 언더그라운드의 영광시대를 연 동아기획군단이라고 하는 거대한 계보도를 형성하는 데 가장 큰 공헌자였으며 약 11년에 걸친 그의 활동 기간은 바로 한국 언더그라운드의 역사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는 이미 떠나고 없지만 그의 노래는 이렇게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시대는 변했다. 그러나 그의 노래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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