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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돌아가는 꼬라지

단원고 2-4반 최성호 아빠가 "한가위에 드리는 편지"

by 속 아몬드 2014. 9. 10.

단원고 2-4반 최성호 아빠가 

한가위에 드리는 편지...[2014.09.08]



사진 pic.twitter.com/SKsBtkw4AE


안녕하세요? 

누군지 알 수 없는 분에게 편지를 쓴다는 게 어색합니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고, 서명을 받고, 호소를 하며 5개월을 보낸 저는 안산 단원고 2학년 4반 최성호 학생의 아빠입니다.


자식을 잃고 5개월의 시간이 지났지만 집으로,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아직도 농성을 하고 거리에 있습니다. 이 거리가 집처럼 느껴지기 전에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이렇게 있습니다. 이 편지를 읽을 당신이 어떤 분일지 궁금합니다. 그동안 저희 유가족들의 마음에 공감하며 유가족의 바램을 지지해주셨던 분이시라면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5개월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모두 놓아버리고 싶었던 순간이 없었다면 거짓입니다. 그런 때에 다시 힘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성호, 그리고 이름을 모르는 수많은 당신들 덕분입니다. 하지만 이 편지를 읽을 당신이 저희 유가족들을 보며 혀를 차거나 눈살을 찌푸리는 분일 수도 있겠지요. 항간에 저희 유가족들을 두고 떠도는 험한 말들을 저희도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혹시, 그런 분이라면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기만을 부탁드립니다.


저희의 처지를 이해해달라는 말은 차마 못하겠습니다. 저희도 저희의 처지가 이해되지 않으니까요. 자식이 죽어가는 모습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는데 정작 부모는 제대로 된 설명을 하나 듣지도 못했습니다. 사고 소식과 동시에 침착하게 대응하면 구조 될 수 있다고 언론에 나왔는데 구조조끼 입으라는 말도, 계단을 올라서 배 위로 나오라는 말도, 우리 자식들은 듣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볼 수 없게 됐습니다.

 

그냥 그게 전부였습니다. 아이가 자꾸 보고 싶은데 볼 수가 없습니다. 아이가 보고 싶어 아이의 친구를 찾으면, 그 친구도 볼 수 없습니다. 그 친구의 엄마가 울어서 같이 울다가, 그 엄마가 들려주는 아이 얘기에 다시 눈물을 닦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아이들이 왜 그렇게 죽어야 했는지 서로에게 묻습니다.


기울어진 배로 다가간 해경은 선장과 선원만 구하고 손을 뗐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던 국가의 존재, 아니

도움의 손길조차 거절하며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했던 그것은 국가가 아니었습니다. 내가 알던 대한민국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살던 세상이 갑자기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게 된 채로 5개월을 보내는 처지를 누가 선뜻 이해할 수 있을까요?


너무나 무기력하게 유가족이 된 저희는 알고 싶었습니다. 왜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가로막고 서서 자식의 죽음을 구경만 하게 만들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진실을 알려 달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책임져야 할 자들에게 책임을 묻고 싶다고 서명 운동을 벌였습니다. 진상을 철저히 조사하기 위해 특별위원회가 필요하다고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습니다.


국민의 서명이 하나둘 늘어 백만을 넘고 이백만을 넘어 480만의 서명이 모였습니다. 그걸 청와대에 가져가려고 했습니다. 무엇이 진실인지, 누구의 잘못인지 알려달라는 온 국민의 힘을 모아 국회로, 청와대로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여당과 야당은 우리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자기들끼리 '합의'라는 걸 했습니다. 그리고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언제든 찾아오라고 말했던 대통령은 자신이 개입할 일이 아니라고만 합니다.

보상, 시체장사, 의사자라는 단어로 부모의 가슴을 후비더니 이젠 경제 살리는 걸 저희가 가로막고 있다고 합니다. 저희야말로 경찰 차벽에 가로막혀 있고, 언론 통제의 벽에 가로막혀 있습니다.


이 편지를 받아 볼 당신에게도 저희가 피 토하는 심정으로 외치는 목소리가 다다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래도 궁금할지 모릅니다. 여야가 두 번이나 합의한 법안을 거부한 이유가 무엇인지, 자식 잃고 힘들다는 사람들이 무슨 욕심을 부리느라 저렇게 버티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데 저희도 궁금합니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혀야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식 잃은 부모에게 설명해주려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가족이 신뢰할 수 있는 전문가에게 조사권, 수사권, 기소권을 부여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입니까? 가족의 이야기를 경청하지 않고 법이 만들어지면, 그 법에 의해 진행될 진상 조사도 가족의 이야기를 경청하지 않을 것이 뻔하지 않습니까? 어쩌면 이렇게 시간을 끌면서 진실을 밝히기 더욱 어려워지는 것을 바라는 세력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저희 가족들은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아이들을 보면 아직도 눈물이 흐릅니다. 내 아이를 다시 볼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보니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눈에 더 들어옵니다. 저 아이들은, 저 아이의 부모들은 우리처럼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게 됩니다. 그래서 멈출 수가 없습니다. 진실이 밝혀지기 어려운 나라에서는 거짓과 부정과 부패가 그칠 수 없습니다. 앞에서는 생명이 소중하다고 말하면서 뒤에서는 위험을 거래하는 사회가 달라질 수 없습니다. 


잔인한 4월의 그날, 어떻게 저런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다며 가슴 먹먹했던 아픔을 잠시라도 느꼈던 분이라면, 조금 더 살펴봐주십시오. 조금만 알려 하신다면 여러분의 가까운 곳에 저희의 진실을 알 수 있는 많은 방법들이 있습니다. 아직은 진실을 알리는 언론이 남아 있고 아직은 진실을 밝히려는 촛불이 꺼지지 않았습니다. 알아봐 주시고, 저희의 외침이 자식을 애달파 하는 부모의 목소리라는 확신이 드신다면 함께해주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주위에 있는 분들에게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알려주시고 함께 외쳐주십시오. 당신이 사람의 마음을 듣는 귀와 전하는 입을 가진 고운 분이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2014.9.8. 추석날에. 

2-4 최성호 아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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