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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돌아가는 꼬라지

신경숙 표절논란 '우국'의 작가 미시마 유키오는 자위대 쿠데타를 촉구하며 할복자살...

by 속 아몬드 2015. 6. 18.

신경숙의 '전설' 중 한 부분이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의 일부를 그대로 옮겼다는 주장이 나왔다. 신경숙의 표절 논란이 처음은 아니다. 그녀의 표절논란은 이슈처럼 지나갔다. 시인이자 평론가인 이응준의 [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 | 신경숙의 미시마 유키오 표절] 허핑턴포스팅으로 한국 문학계가 술렁인다. 표절 앞에 당당한 소설가 있다면 이 논란에 첨언 하겠으나 그렇지 못해서일까 다들 숨죽이는 꼴이라니... 



두 사람 다 실로 건강한 젊은 육체의 소유자였던 탓으로 그들의 밤은 격렬했다. 밤뿐만 아니라 훈련을 마치고 흙먼지투성이의 군복을 벗는 동안마저 안타까와하면서 집에 오자마자 아내를 그 자리에 쓰러뜨리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레이코도 잘 응했다. 첫날밤을 지낸 지 한 달이 넘었을까 말까 할 때 벌써 레이코는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고, 중위도 그런 레이코의 변화를 기뻐하였다.

─ 미시마 유키오, 김후란 옮김, 「우국(憂國)」, 『金閣寺, 憂國, 연회는 끝나고』, 주우(主友) 세계문학20, 주식회사 주우, P.233. (1983년 1월 25일 초판 인쇄, 1983년 1월 30일 초판 발행.)



두 사람 다 건강한 육체의 주인들이었다. 그들의 밤은 격렬하였다. 남자는 바깥에서 돌아와 흙먼지 묻은 얼굴을 씻다가도 뭔가를 안타까워하며 서둘러 여자를 쓰러뜨리는 일이 매번이었다. 첫날밤을 가진 뒤 두 달 남짓, 여자는 벌써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 여자의 청일한 아름다움 속으로 관능은 향기롭고 풍요롭게 배어들었다. 그 무르익음은 노래를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 속으로도 기름지게 스며들어 이젠 여자가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노래가 여자에게 빨려오는 듯했다. 여자의 변화를 가장 기뻐한 건 물론 남자였다.

─ 신경숙, 「전설」, 『오래전 집을 떠날 때』, 창작과비평사, P.240-241. (1996년 9월 25일 초판 발행, 이후 2005년 8월1일 동일한 출판사로서 이름을 줄여 개명한 '창비'에서 『감자 먹는 사람들』로 소설집 제목만 바꾸어 재출간됨.)



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 | 신경숙의 미시마 유키오 표절 - 이응준 / 허핑턴포스트

http://www.huffingtonpost.kr/eungjun-lee/story_b_7583798.html?utm_hp_ref=korea






신경숙 표절논란의 미시마 유키오는 전쟁가능한 자위대를 일찍이 주장한 대표적인 극우 민족주의자다. 그가 할복 자살하지 않고 정치활동을 꾸준히 이어가 승승장구했다면 아베를 몇배 능가하는 어쩌면 히틀러 같은 독재자가 다시 동아시아에 탄생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가 할복 자살하기 5분 전 발표한 '이치카야 연설'을 보면 미국-일본 안보조약을 개정하고 헌법을 개정 해 전쟁가능한 자위대를 촉구하고 있는데... 그가 죽음을 불사하면서 주장한 내용은 현재 아베가 충실히 계승하고 있다.





미시마 유키오 할복 자살

미시마 유키오는 1966년 "방패의 모임(楯の會)'을 결성하여 본격적으로 우익 정치 활동을 했다. 방패회는 무장 투쟁 훈련을 했다. 이는 이후 일본의 신우익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미시마는 1968년에 <문화방위론>을 간행했다. 이는 무질서할 정도로 자유롭게 전개되어 왔던 일본 문화의 정신과 '미의 총람자(總攬者)'로서 그것에 질서를 부여하는 천황이라는 존재를 물질 문명의 더러움으로부터 구해내고, 또한 공산주의의 손으로부터 지키려면 무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미시마는 <문화방위론> 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는 현행 헌법하에서도 실현 가능하다고 서술했다. 죽기 직전 마지막 작품인 "《풍요의 바다 4부작》"을 완성했다.


1969년 우익 운동가 에토 고사부로의 자결에 큰 영향을 받아 1970년 11월 25일 방패의 모임 대원 4명과 함께 자위대 이치가야 주둔지에 '우수 자위대원 표창'을 명목으로 들어가 자위대 동부 방면 총감과 면담하던 중에 가지고 간 일본도로 위협해 인질로 잡은 뒤 부하 8명을 부상하게 했다. 총감의 방 앞 발코니에서 몰려든 기자들을 향해 미일 안보조약 개정, 헌법 개정을 요구, 자위대의 쿠데타를 촉구하는 '이치가야 연설'을 한 뒤 약 5분 후 모리타 마사카쓰와 함께 할복 자살했다. 이 사건은 세간에 큰 충격을 안겼다. - 위키백과



미시마 유키오

미시마 유키오는설국으로 유명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추천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첫 소설인 《도적》을 1946년에 쓰기 시작, 1948년에 발간하여 전후 작가 2세대에 속하게 됐다. 사회에 적응하기 위하여 가면 뒤로 숨어야 하는 한 젊은 잠재적인 동성애자에 관한 자전적 소설인 《가면의 고백》을 뒤따라 발간했다. 이 소설은 굉장한 인기를 얻었고, 미시마는 24세에 유명 인사가 됐다. 미시마는 소설뿐만 아니라, 수필, 가부키 극의 희곡을 썼고, 전통적 노 드라마의 현대적 판본을 작성하기도 했다. 또한 《태양의 계절》로 인기를 끌었던 이시하라 신타로와 더불어 당시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다. 영화에 출연하기도 하고, 자신의 작품 《우국》을 영화화하여 제작.감독 뿐만 아니라 주인공 역을 맡기도 했다. 미시마는 일본인 작가로서 해외에 널리 알려져 국제적 작가로서의명성을 얻었다. 유럽과 미국에서 많은 독자층을 확보했고, 대표작들은 대부분 영어로 번역됐다. 그는 광범위하게 여행을 다니며, 많은 외국 출판인들과 사귀었고, 노벨 문학상 후보에도 두 번이나 지명됐다. 그러나 1968년 자신의 초기 조언자인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자, 미시마는 가까운 장래에 또다른 일본 작가가 그 상을 수상할 가망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미시마는 1940년대의 일본 문단에 자신을 소개했고, 나이 든 가와바타에게 상이 돌아가기를 원한 것으로 전해진다.



미시마 유키오 주요 작품



소설

꽃이 만발한 숲 1941

담배 1946

도적 1948

가면의 고백 1949

사랑의 갈증 1950

순백의 밤 1950

푸른 시절 1950

금색(禁色)1951-1953

파도 소리 1954

금각사 1956

비틀거리는 미덕 1957

교쿄의 집 1959

향연은 끝나고 1960

우국 1961

아름다운 별 1962

오후의 예항 1963

비단과 명찰 1964

풍요의 바다,4부작(1965-1970)

1부, 봄의 눈

2부, 분마

3부, 새벽의 사원

4부, 천인오쇠



희곡

로쿠메이칸 1956

근대노가쿠집 1956

열대야 1960

10일의 국화 1961

사드후작 부인 1965

스자쿠가의 멸망 1967

내 친구 히틀러 1968


평론

소설가의 휴가 1955

부도덕교육강좌 1958

나체와 의상 1960

나의 편력시대 1964

태양과 철 1967

하가쿠레 입문 1967

문화방위론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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