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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와 숫자들 송재경 인터뷰 <관악청년과 홍대 성골의 승수효과를 향하여> / 2010년 weiv 신호미

by 속 아몬드 2017. 8. 9.

송재경(9와 숫자들) | ‘관악 청년’과 ‘홍대(앞) 성골’의 승수효과를 향하여


몇 년 전 직업상∙건강상의 이유로 홍대앞 인디 씬과 거리를 두고 있었을 때 ‘연대’ 출신의 한 인디 밴드 멤버와 만난 일이 있다. 그때 그는 ‘요즘 인디씬의 서울대 강세’ 현상을 말해 주었다. 그때 나는 이상하게 ‘내가 그 현상에 애정과 관심을 가지면 안 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서울대 출신 인디 밴드들의 선전에 관한 이런저런 담론들을 듣고 읽으면서 나의 강박은 굳어갔다. 어느 ‘고졸’ 레이블 운영자(참고로 그는 정말 ‘지성적’인 사람이다)는 “어려서부터 1등 해 본 애들은 뭘 해도 1등 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아요”라고 농반진반이자 언중유골의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그 대학교의 악영향’이라는 일반론으로 환원할 수 없는 다른 서사는 없는 것일까. 그 대학교를 나온 사람이라고 해도 삶이 천차만별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대학교를 나와서 뮤지션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도 왜 상이한 생각을 하고 상이한 길을 걷는 것일까. 이런 생각에서 지난 봄부터 ‘서울대 출신의 인디 뮤지션들’ 몇몇을 만났다. 그들의 증언들을 적절한 타이밍이 있을 때 공개하고자 한다. 아, 까놓고 말하겠는데 ‘팔이 안으로 굽는’ 일은 최대한 피하려고 노력했다.


‘평단에 대한 임팩트’라는 관점에서 볼 때 2010년 한국의 인디음악계는 9와 숫자들의 1집 앨범으로 시작해서 브로콜리 너마저의 2집 앨범으로 끝나는 것 같다. 그 시작을 장식한 9와 숫자들의 송재경(혹은 ‘9’)은 이른바 ‘홍대앞 성골’의 2세대에 속한다. 클럽 빵 등을 찾아가서 그림자 궁전의 공연을 본 사람이라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는 곤란했다. 다른 한편 그는 ‘관악 청년’의 한 명으로 초기 붕가붕가 레이블과 관악청년포크협의회에 ‘9’라는 이름으로 참여했다. 그렇다면 9와 숫자들은 이 두 가지의 변증법적 종합? 아무튼 그는 올해 초 발표된 9와 숫자들의 앨범으로 이 길도, 저 길도 아닌 제 3의 길을 개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상업적 성과 면에서는 장기하와 얼굴들이나 브로콜리 너마저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이 앨범은 ‘평론가가 좋아하는 앨범’으로는 충분한 성과를 올렸다. 천하의 김윤아나 이적의 앨범에게 독설을 퍼붓는 최민우마저 이 앨범에 높은 점수를 줄 정도였으니. 그 앨범에는 1990년대 이전 한국 대중음악 역사에 실존했던 레퍼런스들로 가득하고, 송재경은 그 레퍼런스들을 솜씨좋게 요리해서 새로운 음악적 노선을 개척했다. 그러니 혹시 당신이 ‘음악을 오래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찬성하든 반대하든 그의 이야기에 경청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참고로 음악 텍스트 그 자체보다는 음악의 환경, 이른바 음악적 생태계에 대한 내용이 많은 것은 의도적인 것이다.


일시: 2010년 5월 15일

장소: <상상마당> 6층 카페

질문: 신호미 | 사진: 신호미

정리: 신호미





1. 관악 청년과 홍대(앞) 성골 사이에서: 2002-2005


[weiv]: 이 인터뷰의 취지를 먼저 설명할게요. (중략) ‘키보이스와 마마스앤파파스를 좋아하던 아버지’라든가 ‘고등학교 때 남상아의 사인을 받았다’는 등의 성장과정에 대한 질문은 생략하겠습니다. 곧바로 ‘서울대 출신’ 인디 음악인들의 동향에 대한 이야기로 들어가죠.

재경: 몇 명 있지만, 서로 갈래가 다르고 가는 길이 다르죠. 우리(9와 숫자들), 보드카 레인, 생각의 여름, 브로콜리 너마저, 장기하, 눈뜨고 코베인, 모두가 달라요. 이 가운데 생각의 여름, 장기하, 눈뜨고 코베인은 붕가붕가 레코드와 관련이 있지만, 이들조차 음악적 방향은 서로 다르고요. 브로콜리 너마저의 경우 ‘스튜디오 브로콜리’를 운영하면서 자체제작을 하되 큰 행사가 있는 경우 붕가붕가와 일을 같이 하죠.


[weiv]: 위에 언급한 사람들이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대학문화의 변화를 주도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윤덕원(브로콜리 너마저)과 깜악귀(눈뜨고 코베인)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궁금하네요.

재경: 한마디로 ‘쇼’가 생긴 거에요. 노래동아리 메아리에서 활동하던 윤덕원은 똑똑하고 머리가 좋아서 ‘기획의 달인’이었어요. 웃기는 요소(예를 들어 촌극)을 테마로 해서 노래와 연기 등이 들어가고 경우에 따라서는 정치적 구호도 넣었어요. 윤덕원이 2000년대 초 메아리 전성기의 주역이었죠. 깜악귀는 저보다 2년 선배라서 잘은 모르지만 학내 언론인 스누 나우(SNU now)에서 활동하고 ‘붕가붕가 중창단’을 이끌었어요. ‘도꼬다이’ 스타일이라 기획을 해서 한 번 자리를 깔아주면 그가 와서 엄청난 것을 보여 줬고, 아이디어 면에서 옆에서 지원을 해 준 것 같아요.


[weiv]: ‘축제하는 사람들'(이하 ‘축하사’)이 당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들었는데요. 재경도 참여했나요? 아니면 재경이 축하사를 보는 시각은 어땠나요?

재경: 메아리가 일부, 스누 나우(SNU now)가 일부(고건혁), 그리고 나머지는 성분은 조금씩 다르지만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축하사’가 만들어졌어요. 문화 인큐베이터를 만들어서 정치적 색채는 없애고요. 카페를 만들고 전시회를 개최하고 음악을 듣고 축제를 조직하는 등 총학생회가 하지 못하는 일들을 기획했어요. 총학생회와는 별개였어요. 축제 예산이 있으면 ‘축하사’에 돌아가는 구조였죠. 그래서 학생회가 바뀌면 조금 문제가 생기기도 했어요. ‘축하사’는 제가 입학한 2000년에는 없었고 2002~3년에 생긴 것 같고, 저는 축하사 끝물에 들어간 셈인데 제대한 뒤 2004년 2학기부터 2005년 봄 혹은 여름까지 관여했죠. 붕가붕가 레코드를 만들기 직전까지가 ‘축하사’의 전성기로 생각되네요. 요즘 어떤지는 잘 모르지만….


[weiv]: 재경은 축하사나 당시 대학문화의 변화에 대해 반드시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것 같네요.

재경: 그 이전 대학문화랑 비교하면, 좋게 말하면 복지고 나쁘게 말하면 사치였어요. 요즘 서울시 정책이랑 비슷하다고 할까…. 축제 많고, 전시 많고, 심지어 뮤지컬을 시 차원에서 기획하는 등 문화적인 것을 강조하죠. 그러면 사람들은 ‘살기 좋지는구나, 흥미로워지는구나’라고 느끼겠지만, 실제 그걸 즐기는 층은 제한적이잖아요? 물론 붕가붕가쪽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제가 받아들이는 것은 다를 거예요.


[weiv]: 그렇다면 이런 기획력이 홍대앞으로 들어온 것으로 보아도 되나요?

재경: 그렇죠. 성분은 달랐어도 공통적인 것은, 기획이나 쇼 마인드가 뛰어났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앨범 하나 만들어서 ‘한정 몇 개’라고 하는 것에 부끄럼이 없었어요. 홍대앞에서는 돈 버는 것에 죄의식이 있었고 ‘돈 벌면 나쁜 놈’이라는 생각이 있었잖아요? 돈 버는 것에 관심이 없는 척하고 항상 가난하고 ‘시스템이 어떻다, 음악 듣는 사람이 어떻다’라고 불평하고…. [다른 예지만 해피 로봇의 경우도 건전하게 기획을 잘 하는 사람들인데 초기에는 ‘얍실하다’는 등 따가운 시선이 있었어요.] 아무튼 붕가붕가 등은 재미있는 것을 만들어서 사람을 끌어들이고 결과물을 나누는 것에 대한 오픈 마인드와 기획력이 있었어요. 언제 한 번은 장기하의 공연을 보고 깜짝 놀랐는데, 공연이 한 판의 쇼였어요. 그러니까 음악 하나로 개기는 게 아니라 공연 기획 등으로 컨텐츠를 다각화한 거죠.


[weiv]: 그런 기획력이 처음부터 효과를 발휘한 것 같지는 않고 2~3년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은데….

재경: 그러니까 정리해 보면, 2004년에서 2005년으로 넘어갈 때가 ‘한번 해보자, 재미있겠다’라는 식이었다면, 2005~6년은 ‘제대로 하려니까 하니까 안 되네’라는 분위기였어요. 그러다가 2006년 말에 브로콜리 너마저 EP가 나오면서 ‘어, 우리도 되려나’라고 바뀐 거죠. 그 전에는 언젠가 한번 윤덕원이 제게 어려움을 호소한 적도 있었어요. 그때 저는 ‘극복해야 한다. 우리는 서로 갈 길이 다르다’라고 말했어요. 그 말은 진심이었어요. 지금도 그렇고…. 그런데 2007년부터 [브로콜리 너마저가] 죽 올라가기 시작하고, 그 와중에 장기하가 제대하고 나와서 깜짝 놀랄 만한 걸 들고 나온 거죠. 처음엔 자연스럽게 수공업으로 싱글 만들고, 빵에서 공연 하니까 페스티벌에서 섭외 들어오고, 페스티벌에 UCC 찍으니까 DC인사이드에서 난리나고, 그러니까 방송국에서 연락 오고…. 그 뒤로 장기하가 준(準)연예인 모드를 채택하면서 여기저기서 강한 유대를 보이기 시작했죠.


[weiv]: 붕가붕가에 가담했다가 나온 이유는 정확하게 무엇인가요? 외교적인 이유 말고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 주세요(웃음).

재경: 사실 붕가붕가 초기에는 제 색깔이 많이 들어갔어요. 관악청년포크협의회 앨범에 저도 ‘9’라는 이름으로 참여했고 녹음 과정에서도 제가 맡은 역할이 있었죠. 그런데, 붕가붕가를 나온 이유는, 첫째는 붕가붕가가 홍대앞에 와서 자리잡을 거라고 예상 못했죠(웃음). 그것보다는 마인드가 맞지 않았어요. 어떻게 보면 내가 구닥다리인데 정직하고 묵묵하게 하면 좋겠는데 ‘말’들이 너무 많았어요. 음반 하나 만들 때 쓸데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너무 자주 모여서 불필요하게 이야기를 길게 했어요. 나는 그런 것들 신속하게 처리하고서 음악적으로 내실을 기하고 싶어 나온 거죠.



2. 튠테이블 레이블 송대표: 2006~


[weiv]: 튠테이블을 만들 때 국내외에서 참고했던 모델이 있었나요?

재경: 튠테이블의 모델은 외국의 경우 마타도어가 모델이었죠. 인디 레이블이 시작 단계에서는 ‘음악으로 이야기하자’라고 하지만, 밴드들의 다양한 면모들이 생기고 프로모션을 해서 마케팅의 가능성이 보이면 적극적으로 하게 되잖아요. 예술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찾은 성공한 레이블이라고 생각되어서 ‘긴 호흡으로 가자’는 생각에 부합된 거죠. 국내에서는 일단 비트볼이나 카바레였어요. 어렸을 때부터 봐 온 곳인데, 컨셉이나 비주얼이 확고해서 멋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비트볼은 레이블에 밴드가 눌려버리니까 기를 못 핀다는 생각이 들어요. 비트볼에서 제작한 국내 밴드들은 ‘괜찮다’, ‘대단하다’는 평가가 아니라 ‘재밌다’, ‘비트볼에서 했네’라는 정도의 평가를 받게 되요. 오버컨트롤 되는 거죠. 그건 그 분[이봉수 대표]이 고려해야 할 부분일 거예요. 근데 잘 될 거라고 생각해요. 카바레도 처음에는 좋아했는데 나중에는 조금 산만해진 것 같아요. 사실 튠테이블도 카바레 모델에 가까워졌는데 레이블 전체의 관점, 색깔, 스타일로 정리된 게 아니라서 음반이나 디자인이 들쑥날쑥해지고 있죠.


[weiv]: 레이블의 대표로서 이른바 ‘아티스트 관리’에 특별한 방식이 있나요?

재경: 터치는 거의 안 했고 그럴 능력도 없죠. 단, 흐른의 경우 EP 작업 때 너무 오픈되어 있어서 어떻게 할지 모르니까 선택을 위한 입김을 불어넣기는 했어요. 로로스는 지네들끼리 다 한 거였구요. 기본적으로 뮤지션이 자기가 갖고 있는 부분을 좋아할 때 같이 작업하는 거고, 그걸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대박이 난다거나 소기의 성과 없이도 ‘주체가 만족하면 즐겁게 만들어 가자’는 생각이죠. 음악만으로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렇다고 해서 수익을 생각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중에서 잘 연결하여 만들어 볼 게 있을 거다’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는 거죠…. 그건 장르나 스타일로 이야기될 수는 없고, 마인드의 문제였어요. 지금은 그때랑 생각이 다른데, 그때는 ‘록 지상주의’, ‘음악 지상주의’ 같은 게 강했죠.


[weiv]: 재경의 밴드 외에 튠테이블 소속 아티스트들의 성과는 어땠나요?

재경: 로로스 같은 경우는 음악의 장르적 편중이 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1집 앨범이 1년 동안 2000장 넘게 팔렸으니까 괜찮았죠. 그런 음악으로 그 정도 했으면 나쁘지는 않은 거예요. 그런데 음악 성격상 음원 판매는 약하고, 배경음악으로는 부담스럽죠. 방송에서 틀기도 애매하니까 그쪽 활동에 제약도 있고, 그렇다고 라이브나 행사를 할 만한 팀도 아니니까 프로모션의 폭이 제한되었죠. 밴드의 네임 밸류는 강해서 그 분야에서는 최고의 밴드였고 라이브도 훌륭했죠. 흐른 같은 경우엔 음악 자체는 충분했다고 보거든요. 그 정도면 웬만큼 다양하게 활동할 만한 음악이었는데, 사람들에게 매력을 어필할 만한 아이디어가 없었는지 뜨뜻미지근하게 끝났어요. 개인적으로는 흐른의 전작 EP는 심금을 울리는 뭔가가 있었는데 1집은 너무 세련되고 냉정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weiv]: ‘경쟁업체’들에 대한 송사장(웃음)의 생각을 물어봐도 될까요? 기본적인 판세는 알지만 인사이더의 입장을 듣고 싶네요. 영업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이야기해 주세요.

재경: 홍대앞 지형도가 많이 갈렸는데 제게는 보이거든요. 파스텔이나 해피로봇은 준(準)메이저가 되었고 배급이나 홍보도 자체적으로 해요. 한희정의 경우 훌륭한 뮤지션인데 요즘 음악 시작하는 젊은 사람들 일부는 그녀가 인디뮤지션인지 모르기도 해요. 요조의 경우는 ‘어느 기획사 소속 연예인이야?’라고 물어볼 정도에요. 이렇게 파스텔과 해피로봇은 메이저 가수들과도 접점을 찾고 있고, 소속 뮤지션들도 메이저에 준하는 인지도를 갖고 활동하고 있죠. 해피로봇은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을 주최하는 것에서 보듯 기획력이 좋은 곳이고, 어쩌면 홍대앞의 ‘된장문화’를 만들어낸 게 이종현 대표의 기획력이죠. 그런데 그 분은 ‘상도의’가 있어서 절대로 빈정 상하게 안 만들고 자기와 함께 일하면 확실히 배려해 주는 편이에요. 이번에 9와 숫자들이 뷰티풀 민트 라이프에 참가했는데 뮤지션이 원하는 것도 다 들어 주고… 자기 뮤지션만 챙기지 않고 준비를 철저히 해서 기획하고 또 그만큼 최대한 뽑아내는 사람이죠. 문제는 이것도 한 철일 수 있거든요. 향후 2~3년은 가겠지만 2010년대 중반에는 또 모르는 거죠. 헤비메탈이 뜰 수도 있는 거고 (웃음).


[weiv]: 그에 비하면 루비살롱이나 붕가붕가는 ‘메이저와의 접점을 찾는’ 활동은 하지 않으면서도 나름 레이블과 소속 아티스트의 인지도를 높인 것 같은데요.

재경: 붕가붕가나 루비살롱은 ‘파워 인디’라고 부르고 싶어요. 남의 손 안 빌리고 도꼬다이로 나가는데 확실한 콘텐츠 한두 개가 먹히고 있는 거죠. 그런데 옛날에는 ‘긴 흐름을 만들어보자’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지금은 한 건 한 건에 모든 걸 쏟아붓는 것 같아요. 인디라고 했을 때에는 뮤지션 본연의 음악에 집중해서 최선의 창의적인 것을 뽑아야 할 텐데, 조금 획일화된다고 할까…. 또 기획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음악은 별로고 겉포장만 번지르르하다고 할까요. 그런 방향도 있을 수 있지만 우리는 ‘소소히 하되 힘을 키우자’는 생각이었어요. 우리가 어떤 ‘모델’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도 상당 부분의 인디 레이블은 고전적 방식으로 운영되면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허덕이고 있죠. 튠테이블은 어중이떠중이가 되었고, 완전히 좌초될 것 같다가 9와 숫자들이 그나마 조금은 회생시킨 것 같기는 한데…. 지금은 양쪽에 걸쳐 있는 셈인데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깔까 고민 중이에요. 본격적으로 독자적으로 나가볼까라는 생각은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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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홍대앞 생태계의 기록자 ‘9’


[weiv]: 작은 레이블로 배급이나 프로모션을 모두 담당하기는 아무래도 힘들 것 같습니다. 재경과 튠테이블 경우 파고뮤직과의 관계가 중요할 텐데, 파고뮤직에 대해서도 소개해 주실까요?

재경: 파고는 손관호 사장이 운영하는 배급사죠. 원래는 재즈 음반 라이센스 발매하는 사업을 했고, 영화음악 제작을 많이 했어요. 명음 레코드(후에 알레스 레코드)에서 오래 일하다가, 파스텔의 초기 멤버들 가운데 한 명인데 이런저런 일로 거기서 나와서 자기 자본으로 파고를 차린 거죠. 파스텔에 있을 때의 아이템 가운데 에바 캐시디(Eva Cassidy) 등 몇 개를 가지고 있기도 했어요. 그게 많이 팔렸잖아요? 그러다가 국내 음반 배급까지 하게 된 거죠. 처음에는 [플라스틱 피플의] 김민규 씨가 카바레를 나와서 세운 일렉트릭 뮤즈랑 작업했고, 저희와는 그림자 궁전 때 처음으로 시험적으로 일하게 된 거죠. 배급에 더해서 약간의 매니지먼트와 프로모션을 포함해서…. 그래서 방송이나 페스티벌 출연도 따 오고, 영화음악도 시도는 하는데 아직은 성과가 없네요. 참, 로로스는 방송음악 몇 번 한 적 있는데 자연을 다룬 다큐멘터리 방송이었어요(웃음). 그리고 일본항공(JAL) 타면 로로스 곡 하나 나와요.


[weiv]: 아무리 인디라 하더라도 마케팅과 프로모션은 중요할 수밖에 없어요. 튠테이블/파고의 경우 다른 경우와 비교해서 어떤가요? 한 예로 카바레 같은 고전적 인디 레이블의 경우 배급사는 엠넷이더군요. 나쁘다는 말은 전혀 아니지만 ‘카바레’와 ‘엠넷’은 잘 어울려 보이지 않았습니다.

재경: 한때 드림비트라는 배급사가 있었잖아요. 그런데 드림비트가 망하면서 엠넷이 흡수한 거니까 이상할 건 없죠. 그런데 엠넷 같은 경우 마땅히 배급할 게 없을 때 인디에서 괜찮은 게 있으면 조금 하는 것 같지만, 아무래도 메이저에 신경을 많이 쓸 거예요. 음원 사이트(엠넷 닷컴)를 가지고 있지만 [배급 계약을 해도] 워낙 건수가 많으니까 노출을 잘 안 해 주고. 그에 비하면 저희와 파고와의 관계는 일반적인 레이블과 배급사의 관계보다 끈끈한 편이에요. 요즘 보면 비트볼도 ‘비트볼 뮤직 그룹’이 되어서 비슷하게 가는 것 같아요. 자체제작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배급, 프로모션, 매니지먼트를 대행해 주는 거죠. 3호선 버터플라이랑 굴 소년단 같은 경우가 그런 케이스일 거예요. 미러볼의 경우 엠넷에서 일하던 분이 배급 전문으로 시작한 곳이고 온라인과 오프라인 배급을 다 커버하죠. 보드카레인이랑 아일랜드 시티(9와 숫자들의 드러머가 여기에서도 연주해요) 등이 있는 뮤지커밸 등이 미러볼과 같이 일하고 있죠. 뮤지커밸은 메이저를 지향하지만 인디도 아니고 메이저도 아닌 레이블이죠.


[weiv]: 인디 음악인들에게 음원시장이 어떻게 얼마나 중요한가요(혹은 중요하지 않은가요)?

재경: 뮤지션들한테는 어느 정도 중요할 걸요. 소득이 되니까 유심히 보죠. 제 기억에 브로콜리 너마저는 2007년 싸이월드 BGM 시장에서 엄청났어요. 이미 그 전에도 파스텔에서는 허밍어반스테레오 등이 싸이월드에서 1~2위를 하면서 터진 거죠. 그 뒤 요조도 그렇고…. 그런데 차트에 오르는 걸 떠나서 노출시킬 수 있는 채널이 생긴 게 중요하죠. 그 이전에는 신곡을 다루는 곳이 라디오랑 TV밖에 없으니까 당시에는 인디라기보다는 언더에서 자기 걸 만들어도 전달할 방법이 없잖아요. 그런데 인터넷은 채널이 많으니까 채워야 할 콘텐츠가 엄청나게 많이 필요해진 거죠. 그러니까 클릭질이 된다 싶으면 노출시키는 거죠. 9와 숫자들의 경우도 멜론이나 벅스의 메인에 노출하면서 무료 듣기 서비스를 했거든요. 그런 식으로 노출이 되는 거죠. 사실 벅스는 사용자나 규모가 작고 멜론이랑 싸이월드 합친 게 나머지랑 비슷할 거예요. 그렇다고 해도 벅스 인디 차트는 지금 누가 잘 나가나를 알 수 있는 지표가 되는 거죠. 아무래도 규모가 작으니까 매니아층을 고려한다고 할까….


[weiv]: 인디 전반적으로 음반과 음원의 비중은 어떤가요? 메이저의 경우 음원과 음반의 비율은 이미 7:3이나 8:2 정도가 된 것 같은데….

재경: 인디 경우에는 시장 크기 자체가 작아서 메이저와 비교하기는 힘들지만 음원과 음반의 비중이 거의 비슷하거나 오히려 음반이 조금 더 많을 거예요. 인디는 아무래도 ‘음악이 좋아서 듣고 싶다’, ‘내가 이런 음악을 향유한다’는 식의 ‘된장질’이 중요하죠. 지금도 ‘그림자궁전 1집, 관악청년포크협의회, 로로스 싱글을 구입할 수 있어요?’라는 연락이 올 때가 있어요. 음원은 웹에서 들을 수가 있는데, 듣는 걸로 소비가 완성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이걸 소유하고 있고 향유하고 있다’가 중요한 거죠. 아이돌에서는 이런 형태는 아니잖아요? 티아라나 포미닛 신보 음반을 구매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걸 그룹 문화를 향유한다’는 것은 아닐 테고요.


[weiv]: 9와 숫자들 앨범의 음원은 어땠나요? 튠테이블의 다른 경우도 설명해 주면 좋겠네요.

재경: 속성 상 음원은 처음 나왔을 때 차트에 올랐다가 다른 게 나오면 금방 사라지고… 이건 아이돌도 마찬가지예요. 싸이월드 배경음악이나 멜론 차트에서도 처음에는 볼 수 있었죠. 아까 말했지만 이것저것 따지면 인디 밴드들에게는 음반이 음원보다 더 클 거예요.


[weiv]: 이런 매체환경의 변화가 뮤지션에 미치는 영향에서 장점과 단점이 있을 것 같네요. 1990년대 인디에서 경력을 시작한 몇몇은 이제 상당한 인지도를 확보한 것 같고… 재경 같은 인디 2세대에서 인디 1세대를 볼 때는 어떤 생각이 드는지도 궁금합니다.

재경: 긍정적으로 본다면 다매체화되면서 미디어가 절대권력이 아니게 되면서 그 사람들도 아쉬울 때가 있는 거죠. 색다르고 다양한 게 필요한 때 인디가 답이 되어주니까 장기하, 브로콜리 너마저가 필요했던 거죠. 그리고 루시드 폴과 언니네 이발관이 엄청나게 중요해져서 어쩌면 왠만한 주류 가수들보다 더 유명할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한 10년 간격으로 세대교체가 된 건데 지금은 판이 완전히 바뀌어서 몇몇 빼고는 비실비실한 상태에요. 3호선 버터플라이는 ‘등불’ 같은 존재인데 그래도 기획 공연을 하면 요즘 떠오른 팀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초라해요. 격세지감이죠. 그래도 3호선 버터플라이는 시대의 흐름에 맞게 활동하고는 있지만 대부분은 적응 못하고 도태된 거죠. 음악적으로도 그렇고, 활동하는 것도 그렇고….


4. 숫자 되기 = 음악적 선회?


[weiv]: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 음악에 대한 상세한 질문이 별로 없었네요. 전반적 이야기 몇 개만 물어볼게요. 우선 ’80년대 가요’ 스타일로 음악적 방향을 선회한 배경을 말해 주세요.

재경: 중고등학교때는 소닉 유스(Sonic Youth), 너바나(Nirvana) 등 그런지 록을 좋아했었죠. 미국에 한 달 머물 기회가 있었는데 어렸을 때여서 그랬는지 음악을 들으면 쑥쑥 들어 오더라구요. 그림자 궁전 때도 ‘싸이키델릭 록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죠. 공연에서 지랄발광을 떨었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 음악 만드는 소스나 내가 창조할 수 있는 결과물의 종류가 대폭 늘어난 것 같아요. 찾아 듣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음악들을 좋아했던 적이 있기는 했는데, 그때는 활용할 생각 자체가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오히려 재미없는 결과가 나오고 진정성에 대해 쓸데없는 고집을 부렸죠. 어차피 음악이라는 게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고, 내가 폭넓게 들었던 것들이 있는데 그걸 배제하고 한정된 것만 이용한다는 게 답답해졌어요. 그래서 그런 기준 자체를 오픈하고서 그냥, 만들었어요. 곡은 혼자서 만들고 편곡과정에서 이거 저것 해 보고 싶은 걸 다 했어요. 그래서 제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들었던 음악들이 다 녹아 들어가 있지 않나 싶어요.

[weiv]: 과거의 음악을 다시 듣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면 무언가요?

재경: 개인적 취향일 수도 있는데 이제는 동시대에 일어나는 것들에 대해 별로 무게감을 못 느낀다고 해야 하나…. 그러니까 요즘 홍대앞은 로컬 문화에 대한 애착이 많아졌어요. 옛날에는 ‘그룹 사운드’는 신현준 선배나 글을 썼지, 누가 관심이나 있었나요? 시대를 너무 앞서간 거죠(웃음). 지금은 사람들이 흥미를 갖고 볼 만한 컨텐츠인데…. 그때는 그런 걸 들으면 ‘특이하다’, ‘별종이다’라는 소리나 들었죠. 지금은 달라요. 그 변화의 과정에서 비트볼이 중요한 역할을 한 거죠. 특히 김정미의 [Now]를 재발매한 것이 중요했는데, 그게 엄청난 소스였어요. 요즘은 젊은 애들 가는 술집이나 클럽에서 김정미의 “바람”이 나와요. 지금 멋있고 세련된 건 멋을 안 내는 것, 자연스런 것이 되었어요. ‘세련된 게 좋다’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촌스러워요.


[weiv]: 9와 숫자들의 멜로디는 한국어 가사랑 착 들어맞는다는 느낌이 있어요. 이전에 비해서 작곡이나 편곡 방식도 달라진 건가요?

재경: 작곡할 때의 방식 자체가 완전히 달랐어요. 비유하자면 그림자 궁전 때는 ‘멋있는 옷이 있는데 몸에도 맞지 않고 어울리지 않는데 입고 싶어서 몸을 맞추었던 것’이었는데, 지금은 몸에 맞는 옷을 고른 거죠. 반대로 편곡 과정에서는 영미 음악을 참고한 게 있어요. 스톤 로지스(The Stone Roses), 스미스(The Smiths), 뉴 오더(New Order) 같은 맨체스터 라인을 좋아해서 몇몇 곡에 그런 편곡을 사용하기도 했죠. 그 외 각종 레퍼런스가 많았을 텐데 지금 갑자기 다 열거하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 3호선 버터플라이의 김남윤 씨가 후반 작업을 하면서 적지 않은 아이디어를 제공해 줬는데 “선유도의 아침”을 펫숍보이스(Pet Shop Boys) 풍으로 탈바꿈시킨 것이 대표적인 예죠.


[weiv]: 재경의 가사를 유심히 들어 보면 ‘연애 도사’의 면모가 드러나는 것 같네요(웃음). “말해 주세요”나 “이것이 사랑이라면”은 일부러 오그라들게 쓴 것 같지만, “DNA(디엔에이)” 같은 곡에서는 ‘남자의 허세’도 보이고(참고로 9와 숫자들의 한 여성 팬이 이 곡의 가사는 싫다고 하더군요), “낮은 침대”는 2010년대 한국판 “Norwegian Wood”로 들리네요. 어쨌거나 젊은 남자의 리비도를 문학적으로 표현한 가사가 흥미롭네요. 요즘 너무 ‘건전한’ 가사들이 많아서….

재경: 글쎄요. “낮은 침대” 같은 경우에는 실제로 침대가 되게 낮았어요(웃음). 뭐랄까… 눕기는 쉽지만 누워 있으면 불편한… 그래서 기회만 된다면 (전화벨이 울리면?) 못 이기는 척 일어나 떠나고 싶은 그런 상황…. “말해 주세요”의 경우에는 정말 가사 하나하나와 똑같은 마음이었어요. 진짜 뜨거운 순간에는 한없이 유치해지고, 손발 오그라드는 말과 행동도 계속 터져 나오고…. 다들 그런 것 아닌가요?


[weiv]: 다음에 더 듣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서 그치죠. 아까 이야기로 돌아가서 재경이 ‘찾아 듣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가요들이란 어떤 것이었나요? 이번 음반에 소스나 레퍼런스로 활용한 작품이 있었다면…. 

재경: 그림자 궁전 때는 산울림을 좋아했는데 이번에는 그때보다는 덜 했어요. 단, “삼청동”은 어렸을 때 작곡한 거라서 그룹사운드 스타일이 된 것이죠. 제게 인상적으로 남은 곡들이 있어요. 이문세라든지 그냥 가요들…. 동물원도 좋아했고, 나중에 고등학교 때는 들국화도 좋아했고요. 소스로 사용한 것은 한마디로 약간 ‘싼티’ 나는 포크 음악이에요. 포크 음악 가운데 트윈 폴리오 같은 포크는 고급이었던 것 같아요. 어떤날도 고급스럽죠. 반면 1980년대 포크 가운데 ‘싼티’가 나는 게 있는데 그것들이 오히려 적나라하면서 즐기는 맛이 있어요. 그림자 궁전 하기 전에 거기에 심취하면서 재미로 만든 곡들이 많아요. 그냥 우리말로 흥얼거렸을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 멜로디였죠. 물론 그때는 싸이키델릭 록커라고 생각해서 순전히 재미로만 만들어 놓았던 거예요(웃음). 그중 몇 개가 어필한 거죠. 제 스스로도 그런 건 재미로만 했던 거예요. ‘쪽 팔린다’, ‘간지 안 난다’고 생각하던 겉멋 들었던 시절이고, 간지 내려고 환장하니까 자기랑 어울리지도 않고…. 그때 저는 신념이나 고집이 대단해서 아젠다를 만들고 그랬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게 촌스러운 거죠. 그림자 궁전은 여자 보컬을 잘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서 다시 하고 싶은 생각은 있어요.


[weiv]: 그런데 이런 것도 또 하나의 유행일 수 있지 않을까요?

재경: 그럴 수도 있어요. 워낙 무시하고 있다가 갑자기 트렌드가 된 거니까 하나의 스타일로 정형화되어서 유행으로 끝날 수도 있겠죠.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씬의 ‘체질’이 변한 것 같아요. 동시대 선진국의 음악을 따라 하다가 이제는 과거로부터 무언가를 뽑아내는 게 일반적이 되었어요. 예전에는 복고를 추구하는 사람은 독특한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일반적이죠. 그 점에서 볼빨간은 열 보가 아니라 오십 보를 앞서간 사람이에요.


[weiv]: 재경과 이야기하면서 빵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네요. 2007년 이후 인디 씬이 ‘잘 나간다’는 세간의 평에도 불구하고 빵 같은 라이브 클럽은 ‘여전한’ 것 같습니다. 그곳을 거쳐 갔던 밴드들도 조금 인지도를 얻으면 돌아오지 않는 것 같고….

재경: 빵이 좋았던 것은 김영등 대표가 진짜 많이 독려해 줬어요. 알아 주는 사람들이 없어도 ‘너네가 최고다’, ‘저런 애들은 필요 없다’고 말해 주고, 쥐뿔도 없을 때 앨범 내라고 용기를 주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밴드가 거치는 통과의례 과정이 있는데 빵은 그걸 거친 사람이 활동하기에는 제약이 많은 공간이에요. 가끔씩 재미있게 하는 건 몰라도 그곳에서 열띠게 무언가 만들기에는 제약이 있거든요. 무언가 하고 싶은 건 있는데 선뜻 먼저 제안하기가 곤란해요. (김)영등 형이, 밴드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부터 뻘쭘하게 만드는 게 있어요. 편하게 하고 말도 막 하다가도 어느 순간부터 편하게 대해 주지 않는…. 그래도 장기하나 브로콜리 너마저는 심성이 좋아서 다른 팀이랑 섞여 클럽에서 공연도 하곤 했지만, 저 같은 경우는 더 복잡해요. 한 식구처럼 지낸 사이라서 더…. (김)영등 형의 마음은 다 아는데, 마음 써 주고 뜨거운 마음 갖고 있는 건 아는데 마음 이상의 행동이나 물리적인 무언가가 필요한 것 같아요.


[weiv]: 그런데 9와 숫자들이 ‘음반은 좋은데 라이브는 신통치 않다’는 일부의 평이 있습니다. 불쾌하다면 미안하지만 ‘항변’은 있나요?

재경: 제가 그런 점이 있는데… 완성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요. 사실 완성이란 건 없잖아요. ‘나는 내 걸 찾았다’, ‘이것이 궁극의 것이다’고 하기가 싫은 거죠. 9와 숫자들에 대해서도 ‘더 해서 만들어라’라고 하는데 나는 ‘이건 됐다’라고 생각해요. 흔히 말하는 ‘완성도’에 대한 고민이 없는 편이에요. 지금 하고 있는 작업에 대해서는 최고로 완성된 상태를 찾아야 하잖아요? 완성이란 건 없기 때문에 생생한 걸 담아서 하는 거죠. 그러다 보니 최종적 퀄리티 면에서 항상 아쉬움이 있어요. 라이브도 ‘뜨겁게’ 하고 싶어서 합주도 많이 안 해요. ‘각자 곡을 많이 듣고 각자 생각을 많이 하고 와서 하자’라고 이야기해요. 그래야 새로운 게 나오지 똑같은 걸 반복하면 뻔해지니까.


[weiv]: 독특한 철학이네요! 마지막으로 저를 포함한 평론가들에 대한 평가나 바람이 있나요? [나는 빠져 있지만] 평론가들이 모여 만든 ‘대중음악상’에 대해서도 뮤지션으로 의견이 있다면?

재경: 대중음악상은 처음에는 괜찮았던 거 같은데 갈수록 개인적 취향이 너무 많이 반영되는 것 같아요. 그건 네이버의 ‘오늘의 뮤직’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뮤지션들은 크리틱[평론]에 대한 불만이 많아요. 글발이 약하고 백그라운드가 없는 사람이 아는 선에서 쓰는 경우 감정과잉이 있는 경우가 많고 어떤 웹진들은 합동 블로그 수준인 것 같아요. 물론 필자에 따른 차이는 있는 것 같아요. [weiv] 필자인 최민우 씨나 차우진 씨는, 글은 좋은데 거기는 업데이트가 잘 안 돼서…(웃음). 빨리 컴백해서 글을 쓰시죠? 살벌하게….


[weiv]: 아, 살벌하게는 못 하겠지만 열심히는 해볼게요(웃음).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음악활동에 대한 계획을 말해 줄 수 있나요? 아, 9와 숫자들은 단발성 프로젝트 그룹인가요?

재경: 아뇨, 계속할 거예요. 9와 숫자들은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여지가 있어요. 지금 컴필레이션 음반을 만들려고 하는데, 하고 싶은 장르가 많아서 하나로 녹여내는 작업이 중요할 것 같아요. 그때 그때 해서 이질적인 장르들을 섞어서 스플릿 앨범을 내고 싶어요.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의 윤성호 감독의 장편 영화 음악을 맡기로 해서 곧 작업에 착수할 예정이고, 어쿠스틱 EP 작업도 동시에 진행할 예정입니다. 내년 초에는 모 방송국 드라마 음악 작업을 짧게 하고 봄부터 2집 작업에 착수할 생각이에요. 물론 그 사이사이에 기회가 되는 대로 공연도 할 계획이고요.


[weiv]: 예, 숫자들 사이의 ‘승수효과’를 기대할게요. 시원시원하게 여기저기를 긁어주는 이야기, 고마웠습니다.


출처 : http://www.weiv.co.kr/archives/7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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