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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 강의

조선족, 중국인인가? 우리의 동포인가? 역사를 들여다 보자.

by 속 아몬드 2014. 12. 12.

수원 팔달산 토막시신 살인사건 유력 용의자로 50대 조선족이 보도 되면서 조선족에 대한 비난 여론이 생기네요.

SNS상에는 조선족을 '북산말 쓰는 짱깨'로 표현하기도 하네요. 어디에나 극악한 범죄자는 있기 마련이죠. 그렇다고 200만명에 달하면 조선족 모두를 싸잡아 욕하는 건 누워서 침뱉는거 아닐까요... 그들은 분명 우리의 또다른 모습입니다.





조선족이란

중국 조선족(중국어 정체 朝鮮族 차오센쭈 영어: Korean Chinese, Chinese people of Korean descent)은 중화인민공화국에 거주하는 중화인민공화국 국적의 한민족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의 민족 분류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의 56개 민족 가운데 하나인 조선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 법무부의 출입국 외국인 정책본부가 작성하는 통계 자료에서는 ‘한국계 중국인’(韓國系中國人)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의 조선족 인구는 한족을 제외한 소수 민족 가운데 13번째로 많으며 주로 중화인민공화국 둥베이(東北) 3성(省), 특히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다. 






조선족 역사

한반도와 중국 대륙의 교류의 역사는 아주 오래되어 기원전 24세기 경에 이미 만주 지방에는 한국인의 조상이 되는 민족들이 살고 있었다. 고구려가 나당 연합군에 의해 멸망하자 고구려 유민 일부는 말갈족과 연합하여 발해를 건국하였다. 발해는 한반도 북부와 만주 지방, 연해주 지방 등지를 통치하였다. 발해가 멸망한 이후 고구려계 발해 유민의 일부는 고려로 귀의했지만 나머지는 만주를 지배했던 북방민족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된다.


17세기 초반부터 조선인이 현재의 랴오닝 성에 정착했다는 설이 있으며 17세기 말부터 조선인의 일부가 중국 대륙 동북 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당시 청나라는 동북 지역을 조상들이 유래한 곳이라 하여 비워두었기 때문에 조선인들이 이주하기 쉬운 여건에 있었다. 이들은 화전 등으로 밭을 일구거나 인삼 등을 채집하였다. 


1869년에는 한반도 북부에 대규모 기근이 발생하자 많은 조선인들이 건너오게 되었고 이로 인해 청나라와 조선 사이에 국경 분쟁이 자주 발생하기도 하였다. 조선에서는 두만강 건너편의 조선인 거주지를 간도라고 불렀으며 압록강 건너편의 조선인 거주지를 서간도라 불렀다. 조선인들이 청나라 영토로 유입하는 현상은 1885년 청나라 정부가 조선인의 만주 이민 금지령을 철폐하면서 크게 증가하게 된다.





1910년 대한 제국이 일본 제국에 강제 합병당하자 일제의 토지 수탈로 토지를 잃은 조선 농민, 일제의 탄압으로 조선 내에서 독립 운동을 일으키기 어려워진 사람들 등 다채로운 계층의 주민들이 만주로 이주하였다. 


1931년 7월 2일에는 만주 길림 성 장춘 현 삼성포(중국어: 三姓堡 싼싱바오)에서 만보산 사건이 발생하였고 같은 해 7월 15일에는 김이삼 기자가 길림 우마황 동아여관에서 피살당했다. 1932년에는 일본이 오족협화(만주족, 일본인, 한족, 몽골족, 한국인)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세운 괴뢰국인 만주국을 세우자 일본의 이민 정책으로 만주국으로 이주하는 조선인이 또한 급증하였다. 이 시기에는 간도 지역 뿐 아니라 만주 전역에 다양한 직업의 조선인이 흩어졌으며 만주국 내에 거주하던 한국인 인구가 3백만이 되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조선족은 근현대사에서 통상적인 한국 입장에서의 독립운동 활동과 또한 국공합작에서의 모택동 휘하 군대로 중화인민공화국의 중국 장악에 큰 기여를 하였으며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지고 중국 공산당은 1952년에 민족구역자치실시요강을 발표한다. 이와 함께 조선족의 군사적 기여에 의한 공적으로 길림성 동부에 연변 조선민족 자치구가 생겨났고, 53년 종전과 함께 용도가 없어진 조선족은 1955년에는 연변 조선민족 자치구에서 자치주로 격하되었다. 이 때부터 조선족 출신 인사가 자치주 주장(州長)으로 취임한다. 중화인민공화국의 문화 대혁명 당시 마오쩌둥의 조카 마오위안신은 연변에 건너 오면서 민족 분쟁을 일으켰고 이로 인해 수많은 희생자를 만들었다. 특히 마오위안신은 홍색조반혁명위원회와 8·27 홍색반란단, 홍기전투연군, 노동자혁명위원회라는 홍위병 단체를 조직하여 민족주의 성향을 가진 조선족을 탄압하였다. 당시 인명피해자는 수천 명에 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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