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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 강의

테무진 to the 칸(2)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by 속 아몬드 2013. 9. 25.


    테무진to the칸(2)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2010.01.24.월요일  /  필독

     

     

     

    intro

     

    1편 <짓밟힌 소녀>편에서는 사랑하는 서방님과 함께 시집가는 길에 웬 날강도들한테 당해 몸도 인생도 빼앗겨버린 헐룬의 이야기를 했다. 미녀가 많기로 소문난 올쿠누트 소녀 중에서도 빠지지 않는 외모와 스펙을 자랑한 이팔청춘(몽골에서는 여성의 결혼적령기를 대략 15~19세로 보았다. 남자는 14~17 정도.) 헐룬. 그러나 가난하고 거칠기로 유명한 몽골족의 불한당 ‘예수게이’에게 납치되어 임신하기에 이르는데…

     

    전편에, 예수게이가 세력을 규합한 방식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참고로 이 시리즈는 1편부터 순차적으로 보지 않으면 안 된다. 1편 안 봤으면 빨리 텨가서 보고 오시라.).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초원, 그 중에서도 딱히 별볼일 없던 몽골족. 예수게이는 몽골 부족에 속한 ‘보르지긴’ 씨족의 ‘키야드’ 혈족의 대빵이었다.

     

    일단 몽골족이 뭐가 문제였는지 찬찬이 함 보자.

     

     

    1

     

    당시 몽골초원(몽골족이 초원을 통일하고 나서 ‘몽골초원’이 된 거다. 주의하자. 당시 몽골족은 이 초원 끄트머리에 있는 듣보잡 부족이었다.)은, 크게 보면 세 개의 강력한 부족이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동쪽의 ‘타타르’족, 서쪽의 ‘나이만’족, 그리고 초원 가운데를 차지한 ’커레이트’족이 그들이었다. 오호라, 이는 곧 공명이 주창한 3개의 솥발과 같으니…

     

    …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물론 꼭 틀린 말은 아니지만, ‘천하삼분’과 ‘가난한 풀밭동네에서 먹고사니즘 삼분’은 격이 좀 다르다. 게다가 몽골초원은 외부의 입김을 받고 있었다. 바로 ‘동쪽 숲 사람들’인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가 문제였다.

     

    이동-유목문명의 대척점에 있는 정주-농경문명을 다스리는 중국의 황제(천자)들은 전통적으로 북방 유목민들과 골치아픈 사이를 유지했다. 유목민 남자들은 모두가 전사였고, 대체로 기병이었다. 그리고 가난했기 때문에 약탈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잃을 게 없는 사람들은 싸움도 잘하는 법이다. 약탈이 민족적인 규모로 업그레이드되면 정복이 된다. 그러니 하나의 강력한 지도자(칸) 아래 여러 부족이 규합되면 무시무시한 힘을 발휘한다.

     

    예를 들면, 한 고조(유방)는 흉노족과의 대결에서 대패했다. 그 탓에 한나라는 건국 초기 70여년을 ‘흉노족을 섬기는 나라’로 보내야 했다. 한나라는 무제 때에 이르러서야 흉노족을 격파하기에 이른다. 


    ※무제와 흉노족의 대결은 세계사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중앙아시아에서 발원한 흉노족은 지금의 몽골 초원을 차지했다가 한 무제에게 패해 서쪽으로, 서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그러면서 게르만족을 압박한다. 흉노족에 밀려 서쪽으로 이동한 게르만족은 유럽 토착 민족인 켈트족(현재 프랑스인의 조상. ‘골 족’, ‘갈리아인’이라고도 한다.) 압박한다. 동으로는 게르만족에, 남으로는 로마에 압박당한 켈트족의 영토는 결국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의해 로마의 속주가 되고 만다.(재밌는 것은 게르만족도 흉노와 마찬가지로 기마민족이었다는 점이다. 원래부터 기마민족이었는지, 아니면 흉노와 오랜시간 싸우면서 그들을 모방해 기마민족이 되었는지 분명치 않다.)

     

    한편 게르만족은 유럽 각지를 정복하는 정복민족이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쪽을 향한 행군’을 멈추지 않은 흉노족은 결국 로마를 멸망시킨다. 로마를 접수한 ‘훈족의 아틸라’는 서양 역사에 등장한 최악의 정복자다. 여기소 ‘훈’은 바로 흉노족을 뜻한다. 흉노는 ’훈누’를 한자로 음역한 것인데, 훈은 ’인간’을 뜻하는 고대 유목민의 언어다. ‘누’는 태양을 뜻한다. 그런즉슨 ‘훈누( 흉노)’는 ‘태양의 사람들’이라는, 무척 간지나는 단어다. 그러나 훈누에게 시달린 중국인들은 훈누를 한자 匈奴’로 음역한다. 오랑캐 ‘흉’ 자에 종놈 ‘노’ 자다. 쉽게 말하면 <상것 of the 상것>이란 뜻. 역시 ‘문자를 소유’하는 것은 대단한 권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중국 조정의 입장에서는 기마민족들에게 약탈을 하지 않아도 만큼(최소한 약탈행동을 억제할 만큼) 물자를 대주는 가장 속편한 방법이다. 전쟁비용을 생각해보면, 값에 평화를 사는 방법이다. 군사력에 눌려서 하국(下國) 처지가 되었을 조공을 바친다. 왕조의 힘이 궤도에 올라 북방을 압도하게 되었을 별볼일 없는 조공을 ‘받아준’ , 막대한 하사품을 내려주는 식이다.

     

    물론 공짜는 없다. 황제들은 ‘제국-조공국’의 정식 외교관계가 수립되면 보통 초원과 숲에서 영향력 있는 칸들을 봉신, ‘내 꼬붕’으로 임명한다. 비록 형식적이지만, 이렇게 관계를 확실히 못박으면 그때부터 칸들을 입맛대로 조종할 있게 된다.

     

    어떻게 조종하는가? 바로 오랑캐로 오랑캐를 잡는 ‘이이제이以夷制夷’이다. 군사력도 덜 들이고, 돈도 덜 들이면서 북방을 관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여기저기 찔끔찔끔 지원해주면서, 지덜끼리 싸우면서 에너지를 소모하게 하는 거다. 북방세력은 보통 관리가 안 될 때 엄청난 덩치로 규합되곤 했다. 예를 들어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했을 때 조선과 명나라는 왜군을 물리치는 데 군사력을 집중해야 했다. 틈에 여진족이 세력을 규합해 결국 청나라가 탄생되기에 이른다.

     

     

    2

     

    중화문명의 무서운 점은, 한()족이 혈통개념이 아니라 문화개념이라는 있다. 이민족도 관습과 언어, 사고방식을 받아들여 중화에 동화되면 한족이 된다. 한족은(지들끼리 싸운 말고) 물리적인 싸움에서 수없이 이긴 만큼이나 수없이 졌지만, ‘중화’는 끝없이 확장되었고 한족은 계속해서 늘어났다. 왕조가 무너져도 문화로 삼켜버리는 거다.

     

    따라서 이 때의 금나라는 중국, 혹은 ‘북중국’이라 봐도 무방하다.

     

    당시 중국문명의 ‘적출’은 송나라였지만, 금나라와 대륙을 남북으로 양분하고 있었다. 송나라는 인구도 많고 부유했지만(중국 남부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었다.) 금나라의 군사력에 눌린 채였다. 또한 북중국(과 만주, 발해 일대)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금나라였다. 따라서 ‘북방관리’도 금나라가 했다. 한편 고려와 송은 금나라에 대항하기 위해 연합하고 있었다(금나라가 육로길을 차지해버렸기 때문에 해상으로 교류할 수밖에 없었다.).

     

    금나라는 기마-유목민족이 세운 나라지만, 다른 이민족 왕조가 그렇듯이 예의 ‘중화의 흡수력’에 빨려들었다. 금나라 조정은 정주문명을 대변했으며, 중국의 논리로 ‘오랑캐’들을 관리했다.

     

    여기서 잠깐, 오랑캐란 말이 왜 나왔는지 짚어보자. 중세 몽골어에 ‘우리얀카이’라는 말이 있다. ’숲 사람들’을 뜻하는 말이다. 우리얀카이는 특정 부족의 이름이 아니라 ‘숲에 사는 기마-유목부족’을 통칭하는 말이다. 한반도가 머리에 이고 있는 만주의 평지는 땅이 많고 거칠다. 따라서 주로 숲이 삶의 터전이 수밖에 없다. 하여 한반도를 직접적으로 위협한 ‘오랑캐’는 여진족이든, 돌궐(투르크, 즉 터키)족이든, 말갈족이든 거란(키타이)족이든 일단 지리적으로 우리얀카이인 것이다. 원래의 중세 몽골어 발음으로는 ’오리앙카이’가 정확하다고 한다. 오리앙카이를 빨리 발음해보라. 우리말 <오랑캐>는 오리앙카이 한반도식 발음이다.

     

    여튼… 금나라는 물자를 던져주며 초원을 콘트롤했다. 물론 딱 먹고 살 만큼만 준다. 원래 가난한 사람이나 집단일수록 조금의 돈으로도 부릴 있지 않은가. 괜히 ‘퍼줬다가’, 세력을 규합해 쳐들어오면 어쩐단 말인가.

     

    금나라가 주로 지원한 부족은 동쪽 초원을 차지하고 있던 타타르족이었다. 타타르족은 금나라 조정의 사주를 받아 주변 부족을 약탈하고 압박했다. 그 탓에 군소부족들은 단일부족, 혹은 부족연맹체로 덩치를 불리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런데 금나라는 타타르만 지원한 것이 아니었다. 타타르가 초원을 다 먹어버리면, 그때부턴 골치아픈 적이 된다. 그래서 초원 중간의 커레이트족도 ‘관리’했다. 그 결에 몽골족은 금나라, 금나라의 사주를 받은 타타르, 커레이트족 등 이런저런 세력으로부터 ‘관리’를 받는 처지가 된다. 가끔씩 밟아주고, 분열을 조장하고… 분열되기 쉬웠던 이유는 가난했기 때문이다. 몽골족의 웬만한 씨족들은 가축 몇마리만 던져줘도 기꺼이 용병노릇을 할 만한 처지였다.

     

    이 상황에서 예수게이의 생존전략은 전투와 약탈, 배신 등으로 연고지를 잃어버리거나 부족을 떠난 사내들을 규합하는 방식이 수밖에 없었다(전편에서 예수게이가 ‘비혈통집단’의 수장이 되는 과정을 이야기한 있다.). 예수게이의 조직은 사냥꾼이자 강도떼이자 용병집단이었다.




     

    예수게이는 최소 수백 명의 부하는 모았던 것 같다. 그런데 무력을 행사할 수 있어도 여전히 가난하니, 뭔가 탈출구가 필요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게이가 한 가장 잘한 일이 있다. 바로 ‘토그릴’이란 남자와 ‘안다’관계를 맺은 것이다.

     

     

    3

     

    토그릴은 커레이트족의 전사였다. 커레이트족은 하나의 부족이라기보다는 여러 부족이 모인 ‘부족 연합체’였다. 그러다보니 이 중에는 인종적으로 ‘몽골족’으로 분류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돌궐족(투르크족, 즉 현재 터키인의 조상), 위구르족(신장 위구르 자치구 원주민의 조상)도 있었다. 아마 원시적인 수준의 <부족 연합국가>체제였을 것이다. 허술한 체제였지만 왕족도 있었다. 토그릴은 왕족이었다.

     

    토그릴은 숙부와 권력투쟁을 하다가 졌다. 패잔병들을 이끌고 초원을 전전하다가 결국 초원의 깡패로 명성(?)을 쌓아가고 있던 예수게이를 찾기에 이른다. 예수게이밖에는 의지할 데가 없었을 것이다. 먹고 살만한 부족들이 뭐가 아쉬워서 강력한 커레이트 족을 적으로 돌리는 도박을 하겠는가? 어차피 ‘싸움에 진 개’인 그들을 도워줘서 말이다.

     

    그러나 예수게이는 먹고 살기 위해 싸움거리와 약탈거리를 간절히 찾아헤메는 킬리만자로의 하이에나… 아니 초원의 들개. 그에겐 바로 이런 도박이 필요했다. 만약 토그릴이 왕좌를 차지하면 든든한 지원을 받게 된다. 실패하면? 토그릴의 무리를 흡수해버리면 된다. 뭐 어차피 별로 잃을 없는 조직이었다.

     

    그리하여 예수게이는 토그릴과 ‘안다’를 맺었다. 안다란 의형제를 뜻하는 몽골어인데, 보통 ’blood brother’로 번역된다. 피로 맺은 형제란 뜻. 실제로 안다 의식 중에는 서로의 피를 마시는 것도 있었던 모양이다.

     

    문화권마다 인간의 영혼이 어디에 있는지 설정하는 방식이 조금씩 다르다. 전통적으로 머리(두개골)인 곳도 있고, 심장을 쳐주는 데도 있다. 당시 몽골초원 사람들은 인간의 영혼이 피에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자체가 영혼이나 다름없었다. 상대의 피를 마신다는 것은 영혼을 교환한다는 뜻이고, 이로써 사람은 일심동체가 되는 것이다.

     

    안다를 맺은 두 사람은 토그릴의 패잔병과 예수게이의 조직원들을 합쳐 군대를 편성해 커레이트족을 습격했다. 그 결과 토그릴은 정적들을 물리치고 거짓말처럼 커리이트족의 칸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예수게이는 초원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그는 무려 커레이트족의 수장의 ‘안다’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는 동안, 헐룬은 만삭이 되었다. 한편 금나라는 타타르와 커레이트가 지덜끼리 싸우게 만들기 위해 토그릴 칸을 지 신하로 책봉했다. 토그릴 칸은 역사에서 ‘옹 칸’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금나라 조정이 만들어준 이름이다. ’옹’이란 발음은 초원 사투리인데, 한자로 ()이다. 씨바, 칸이 이미 왕이란 뜻인데 거기다 자를 붙이다니… 총수님이 좋아하는 ‘족발’같은 작명법이다. , 하는 . 한마디로 대충 지어줬단 얘기다. 금나라 조정이 초원 유목민들을 얼마나 무시했는지 있는 대목이다.

     

    하여간 이이제이의 논리에 걸려, 그리고 그 이전에 각자의 생존을 위해 타타르와 커레이트는 서로 가축과 사람, 물자를 약탈하고 습격하며 또 가끔은 국지전도 벌이면서 원수가 되었다. 예수게이로서는 호재였다. 안다의 적은 곧 나의 적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즉 싸움의 기회를 얻었다는 얘기다.

     

     



     

     

    타타르족은 금나라 입장에서는 거지새끼들이었겠지만, 금나라가 던져준 약간의 물자 때문에 몽골족의 기준으로는 뎁따 부자였다. 전투를 벌이면 빼앗아 것도 많았다. 그래서 예수게이는 자동적으로 타타르족과 원수가 된다.

     

     

    4

     

    그날도 예수게이는 타타르족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는 한 타타르 장수를 죽였는데, 이 전사의 이름이 ‘테무진 우게’였다. 테무진은 바다나 호수처럼 ‘넓게 퍼진 상태’를 뜻하는 중세 몽골어다. 여튼 이 타타르 장수의 운명은 자기 이름대로 평탄하지 못했다.

     

    예수게이가 보르지긴 씨족의 야영지로 돌아왔을 때, 헐룬은 마침 그의 아들을 출산한 상태였다. 아이는 한 손에 핏덩어리를 쥐고 태어났다고 한다. 예수게이는 즉석에서 아들의 이름을 결정했다. 자기가 죽인 타타르 장수의 이름을 따서 ‘테무진’이라고 지었다.

     

    아마 적을 죽인 일을 기념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아니면 비록 죽었지만, 용감하게 싸운 적수에게 경의를 바치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혹은 원통하게 죽은 영혼을 달래려고 했을지도. 그렇다면 작명센스는 살생 직후에 태어난 아이를 원혼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최상의 방법이었으리라. 아이를 원혼에 바치는 ‘척’하는 거니까.

     

    10년 전, 21세기를 앞두고 세계의 유력 언론사들은 <지난 천 년간 가장 위대한(중요한) 인물>을 선정했다. 언론사마다 선정한 인물들과 순위가 제각각이었지만, 1위는 예외없이 테무진이었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테무진은 역사상 생물학적으로 가장 성공한 수컷이기도 하다. 전 세계에 테무진의 후손이 6000만명이라고 한다(오타 아니다). 세계인구의 1/100 사람의 후예인 것이다(정작 테무진 본인의 성생활은 소박하고 건전했다. 대신 할아버지 만난 손자들이 마음껏 지르고 다녔다.).

     

    이런 인간이 태어난 것이다. 가난에 찌든 지구 한귀퉁이의 시골 of the 시골에서… 이 촌구석이 어떤 곳인가 함 보자. 몽골에는 ‘부르칸 칼둔’이라는 산이 있다. 몽골역사에서나 테무진의 일생에서나 참 중요한 산이므로 알아두자. 술자리 및 소개팅녀 앞에서 아는척하는데 무척 유용하다.

     

    중세 몽골어에서 ‘부르칸’은 ‘무당의 혼’을 뜻한다. ‘칼둔’은 돌산, 절벽을 뜻한다. 기암괴석의 느낌도 조금 있다. 즉 부르칸 칼둔은 이름 그대로 ‘신성한 영기가 서린 산’이란 뜻이다. 참고로 몽골사람들은 산, 특히 암벽을 드러내며 솟은 산에 영험한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고려가 항복하면서 정식 국교를 맺고 나서는 <금강산 숭배사상>이 생겨나기도 했다. 성지순례를 하러 몰려오는 몽골인들이 무척 많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야기하겠지만 – 고려의 항복은 꽤 굴욕적이긴 했지만 무척 좋은 조건의 항복이었다. 고려는 국호와 왕조, 체제 등 민족적 정체성을 고스란히 지킬 수 있었다. 몽골과 국가총력전을 벌이다 패한 나라로써는 유일한 사례였다.). 금강산의 일만이천봉은 몽골인들에게는 특히나 압도적인 풍경이었을 것이다.

     

    원래 원시적인 토속 종교를 보면 동서고금을 통해 산이든, 작대기든(우리나라의 ‘솟대’같은 경우), 나무든 ‘위로 솟은 것’을 숭배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자연스럽고 직관적인 현상으로, 하늘의 기운이나 의지를 인간이 사는 지상에 연결하는 ‘매개체’로 생각하는 것이다.

     

     



    부르칸 칼둔

     

    몽골초원엔 부르칸 칼둔에서 시작하는 세 개의 강이 있다. 첫째, 오논 강.

      



     

    둘재, 케를렌 강.

      



     

    그리고 툴라 강.

      



     

    테무진은 오논 강변에서 태어났다. 그는 인생의 많은 시간을 오논 강 줄기와 케를렌 강 사이에서 보내게 된다.

     

    앞으로 누누히 설명하겠지만 훗날 세계를 정복하는 몽골사람들은 의외로 피를 싫어했다(앞서 안다를 맺는 의식 이야기를 하기도 했지만, 피를 먹는 짓까지도 하니까 안다가 되는 거다.). 정확히 말하자면 ‘피를 흘리는 것’과 ‘피를 보는 것’, ‘피를 묻히는 것’을 혐오했다. 피란 영혼이므로, 흘리는 게 좋을 없다. 잘못하면 상처가 감염되듯이 다른 ()들에 오염될 수도 있다. 자기가 죽인 자의 피가 묻으면 귀신이 씌이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몽골 전사들은 기본적으로 활의 전사들이다. 되도록이면 활로 전투를 끝내고자 하는 전술적인 이유가 절대적이지만, 이런 심리와도 무관치 않다. 활 다음의 기본적인 무기는 몽골식 환도(구부러진 칼)였다. 하지만 비교적 피를 보면서 상대를 죽이거나 낙마시키는 철퇴도 많이 사용했다(물론 철퇴가 기마병들에게 무척 좋은 무기라는 점은 간과하지 말자. 기병에게 ‘낙마’는 죽음과 크게 다른 말이 아니다.).

     

    그러니 핏덩이를 쥐고 태어난 게 별로 좋아 보일 리 없다. 역사에는 날 헐룬이 테무진에게 분노를 터뜨리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녀는 이때 이 핏덩이를 언급한다. 피를 쥐고 태어나더니 역시 그럴 알았다는 뜻이다. 영웅의 탄생에 이렇게 불길한 느낌을 주는 장면이 묘사됐다는 , 이게 전설이 아니라 사실이라는 뜻이다. 

     

     

    5

     

    그럼 당시 몽골족이 어떻게 분열되어 있었는지 보자. 한 번도 통일되지 않았는데 분열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오류다. 분열이라는 개념은, 최초의 통일 이후에나 가능하다. 즉 몽골족은 이전에 통합되었던 적이 있다. 예수게이의 할아버지도 칸이었다. 이름하여 ‘카불 칸’.

     

    몽골부족연맹체를 이끌던 카불 칸은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와 연관이 있다. 위인전 읽어보신 분들은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아실 거다. 거란의 10 병사를 물로 쓸어버린… 강감찬의 귀주대첩도 있다. 거란은 차례의 대규모 고려 원정에서 탈탈 털린 (물론 고려도 극심한 고생을 했다.) 세력이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몰락은 100년여에 걸쳐 일어났지만, 그래도 길게 보면 ‘꺾이는’ 시점이란 있는 법이다.

      



    요나라의 불상

     

    결국 요나라는 당시 초원의 강자로 부상하던 금나라에 멸망당하고, 요나라의 왕자인 옐뤼다시(야율대석, 耶律大石 : 야율은 거란 왕족의 성씨다.)는 남은 거란 전사들을 긁어모아 몽골 초원으로 튄다. 이때 금나라 군대도 옐뤼다시를 쫓아 초원으로 들어온다. 금나라 군대에겐 추적이었지만, 몽골족 입장에서는 침략이었다. 여기서 초원을 내주면 앞으로 무슨 일을 당할지 몰랐다.

     

    카불 칸은 급히 전사들을 불러모아 금나라의 추적군을 물리쳤다. 이때 생긴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금나라 황제의 궁전에서 회담이 열렸다. 회담은 잘 되지 않았다. 여진족의 황제(카간)가 카불 칸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카불 칸은 그에 대한 답례로 여진족 황제의 수염을 잡아당겼다!

     

    … 물론 그러고 나서 있는 힘을 다해 초원으로 튀었다. 금나라의 추적군은 결국 카불 칸을 놓치고 말았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카불 칸은 곧바로 대규모 약탈대를 조직해 남하한 후 금나라 국경을 약탈했다. 테무진도 자기 증조할아버지 얘기를 듣고 자랐을 것이다. 이런 역사가 있었으니 금나라 조정이 타타르족을 조종해 몽골족을 괴롭힐 법도 하다.

     

    한편 초원 서쪽 바깥까지 도망치는 데 성공한 옐뤼다시는 서요(西療)를 세워 성공한 남자의 인생을 살았다. 훗날 한자로는 ‘덕종(德宗)’으로 불리게 된다.

     

    요나라는 망했지만 다시 서요를 세운 거란족들은 자기네 나라를 ‘카라 키타이’라고 불렀다. 키타이는 거란이란 뜻이고, 카라는 까맣다는 뜻이다. 왜 까말까? 중앙-동-북아시아의 유목민들은 혈통을 가릴 때 ‘검은 뼈’, ‘흰 뼈’라는 말을 썼다. 결정적 사료는 없지만 정황상 유목민의 후손일 게 거의 분명한 신라의 귀족층 역시 성골, 진골 하면서 뼈라는 단어로 인간의 등급을 가렸다.

     

    순혈일수록 흰 뼈라고 한다. 즉 A라는 칸이 있었는데 100년 후 후손집단이 B집단과 C집단으로 나뉜다. A칸의 피를 많이 물려받은 B씨족은 흰 뼈다. 바깥 피가 들어와 다소 거리가 있는 C는 검은 뼈다. 같은 조상을 둔 사이지만, 이렇게 파가 갈린다. 물론 ‘흰 뼈’가 귀족이다. 즉 카라 키타이라는 국명은 키타이는 키타이이되 진짜 키타이, 즉 요 제국을 잃어버리고 쫓겨온 키타이라는 뜻으로, 나름 실향민의 아픔이 베어있는 이름이다.

     

    예수게이와 테무진은 흰 뼈가 아니었다. 보르지긴 씨족의 카불 칸은 자식이 일곱이나 있었지만, 자신의 씨족이 아닌 타이치우드 씨족의 전사인 ‘암바가이’에게 칸 자리를 물려준다. 원시적인 부족연합체는 본래 따로 왕조를 두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아버지 만나서 칸이 되는 아니라, 능력을 통해 칸으로 선택받는 식이다. 요나라도 원래는 3년마다 번씩 의회를 열어 카간(대칸, 황제) 선출했다.

     

    그러다보니 조상 중에 칸이 하나 있다고 귀족은 아닌 거다. 오히려 몽골 족이 태동한 역사를 보면 보르지긴 씨족은 ‘검은 뼈’에 가깝다. 또한 뼈의 색깔이 희고 검은지는 현재 실권을 자와 얼마나 가까운지로 결정되는 게 현실이었다. 그러다보니 테무진은 칸이 때까지 귀족이 아닌 평민 취급을 받으며 살았다.

     

    테무진이 태어났을 때, 그의 먼 친척인 자다란 씨족에는 이제 걸음마를 (, 뗐을 수도 있다.) 남자아이가 있었으니… 이름은 ‘자무카’. 앞으로 자주 등장할 이름이니까 기억해두자.

     

    여하튼 수십 개의 씨족이 각자 자기 살 길을 찾고 있던 몽골족. 이중 중요한 씨족은 역시 다음과 같다.

     


    - 초원의 싸움꾼 예수게이 때문에 급부상하고 있던 보르지긴 씨족

    - 훗날 자무카에 의해 급부상하게 되는 자다란 씨족

    - 독자적으로 씨족이 아닌 부족의 사이즈까지 성장한 타이치우드 씨족

     

    씨족은 칸을 옹립할 만한 단위가 아닌데도, 덩치가 있던 타이치우드족엔 칸이 있었다. 이자가 바로 ‘뚱뚱이 칸’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던 ‘타르쿠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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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르지긴, 타이치우드, 자다란 씨족의 역사 이야기를 잠깐 해보자. 씨바 분량상 그냥 패스하려고 했는데, 너무 재밌는 얘기라 할수가 엄따…

     

    초원의 북쪽 끝과 시베리아 숲이 만나는 곳에 ’보돈차르’란 사내가 살았더랬다. 모든 부족이 그렇겠지만, 몽골족도 ‘하나의 가족’에서 출발했다. 보돈차르와 그의 아내가 모든 몽골족의 조상이다.

     

    보돈차르는 막내였다. 형제들 중에서 머리도 가장 나쁘고, 몸도 약했다. 그래서 별명이 <바보>였다. 부모가 죽자 보돈차르를 포함한 다섯 형제들은 당연히 가축과 식량 등의 유산을 나누어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보돈차르는 바보답게 아무것도 나눠갖지 못했다. 뭣하러 저런 등신같은 놈까지 신경을 써주는가? 줄어들게 말야…

     

    그래서 보돈차르는 비루먹은 말 한 마리만 갖고 쫓겨나듯 가족을 떠나 혼자 살게 된다. 보돈차르는 비참하게도 풀을 엮어 만든 움막을 짓고 산다. 초원에서는 아무리 가난해도 게르에서 산다(아래 사진).

      



     

    하긴 저 흰 천, 저거 양털로 만드는 거다. 형들이 마리 나눠주지 않았으니 뭘로 게르를 만들 있겠는가. 생계가 막막해 늑대가 먹다 남긴 것을 주워먹고 살았다. 이렇게 가난하게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는데 이게 웬일, 멀리 무리의 사람들이 와서 게르를 치고 야영하는 아닌가(유목민들은 주기적으로 야영지를 바꾼다.). 아마 씨족이나, 아니면 자그마한 부족 정도 단위의 (아마도 시베리아의) ‘숲 사람들’ 이었다.

     

    이 사람들은 보돈차르가 불쌍했는지, 매일같이 찾아오는 보돈차르에게 몽골 사람들의 기본 음료 중 하나인 아이라크(말젖을 발효시켜 만든 술) 주고 먹을 것도 주었다. 한편 셋째형 보고 카타기는 아무래도 막내를 버린 못내 마음에 걸렸나 보다. 그래서 결국 오논 줄기를 따라 동생을 찾으러 나선다. 그러다가 무리의 사람들을 만나 묻게 된다. 저기 혹시…약골에, 볼품없는 한마리를 타고 댕기는 멍청한 사내놈 하나 봤소…?

     

    “어, 매일 우리한테 와서 술 얻어먹고 가는 사람인데요.

     

    그리하여 두 형제는 오랜만에 상봉하게 된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몽골 역사 특유의 소박한 매력을 느낄 있다. 보돈차르의 배은망덕과 비열함이 솔직담백하게 기록되어 있으니까…

     

    “형, 내가 보니까 말야, 저 사람들 졸라 만만한 인간들이야. 우리가 약탈하자!”

     

    그러자 카타기가 대답했다. Why not? 

     

    유산 분배 때 이기적인 모습을 보였던 네 형들은 약탈을 위해선 보돈차르와 기꺼이 편이 됐다. 다섯 형제는 이 부족(혹은 씨족) 습격해 철저히 약탈했다(아마 자기들 다섯 이외에 따로 부하들 혹은 동료들이 있었을 것이다.). 식량은 물론 게르, 살림살이, 심지어 사람까지 탈탈 털었다.

     

    그 와중에 보돈차르는 임신한 여자를 득템해 강제결혼한다. 당연히 아이는 잃어버린(혹은 죽임당한) 남편의 자식이다. 첫째아이의 이름이 ’자다라다이’. 그가 바로 자다란 씨족의 조상이다. ‘자다라다이’에서 자다란이라는 씨족명이 나왔다. 불쌍한 여자는 뒤로 당연히 보돈차르의 아이들을 낳게 된다. 보르지긴족과 타이치우드족의 조상은 보돈차르의 친자식이다. , 보돈차르는 그래도 양심은 있었는지 씨다른 첫째아이에게도 아버지의 의무를 다했다.

     

    그렇다면 자무카의 자다란 씨족이 흰 뼈인가, 아님 테무진의 보르지긴 씨족이 흰 뼈인가? 기준에 따라 다르다 : 몽골족의 조상을 보돈차르로 것인가, 보돈차르의 아내로 것인가. 혹은 그냥 이들 ‘부부’를 조상으로 것인가. 전자라면 보르지긴과 타이치우드의 혈통이 고급이다. 후자일 경우 ’씨’와 상관없이 첫째인 자다라다이가 적통이다.

     

    결국 어느 씨족이 진정한 흰 뼈인지는, 훗날 테무진과 자무카의 목숨을 대결을 통해 가려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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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무진은 사랑받고 자랐을까? 잘 모르겠다. 내 생각이지만, 별로 그랬던 것 같지는 않다. 예수게이 가족 야영지를 옮기면서 테무진만 빼놓고 이동한 적이 있다. 일부러 그런 아니겠지만, 하필 많은 형제들 중에 테무진만 잃어버린 보면 적어도 애지중지한 같지는 않다.

     

    이때 마침 초원의 미아 테무진을 발견한 이들이 타이치우드족이다. 어차피 몽골족은 서로 가깝게 붙어 살았으니, 그럴 만도 하다. 뚱뚱이 칸은 한동안 테무진을 보살폈다. 그런데 초원은 인구가 적고 사방이 뚫린 평지인데다가 언제나 말을 타고 이동한다. 그래서 놀랍도록 소식이 빠르다. 그런데 ‘한동안’ 찾아가지 않았다니. 칸이 보살핀다는데 안심이야 됐겠지만, 확실히 특별한 귀여움을 받진 않은 모양이다. 재밌는 , 뚱보 타르쿠타이가 나중에 테무진의 철천지 원수가 된다는 사실이다.

     

    테무진에게는 형제가 여럿 있었다. 함 살펴보자. 먼저, 계모인 소치겔이 낳은 두 아들.

     


    - 테무진의 배다른 형 벡테르()

    - 벡테르의 친동생 벨구타이(남)

     

    그리고 헐룬의 자식들.

     

    - 첫째 테무진(남)

    - 둘째 카사르(남) : 덩치가 좋았으며 테무진의 형제들 중에서 가장 활솜씨가 좋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 셋째 카쥰(남) : 테무진이 가장 사랑한 동생이다.

    - 넷째 테무게(남)

    - 막내 테물린(여) : 유일한 여동생

    마지막으로 형제는 아니지만, 아버지가 소유한 꼬마노예였다가 훗날 테무진이 유산으로 상속받은 ’젤메’. 어려서부터 함께 성장했는지, 아니면 ‘소유주’만 예수게이-테무진인 채로 있다가 나중에 섬기기 시작했는지 확실치 않다. 어쨌든 중요한 이름이니 기억해두자.

     

    이렇게 해서 테무진은 7명 혹은 8명의 아이와 함께 강변에서 성장하게 된다.

     

     



    이렇게 행복에 쩔어 살진 않았을 거다.

     

     



    걍 이정도 포스로 성장했다고 생각하면 .

     

    당시 아버지가 잘 나가고 있었으니, 가난한 곳이었을지언정 먹고 사는 데는 그닥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 테무진은 비교적 평탄하게 성장해 9살이 되었다. 결혼할 상대를 정할 나이가 된 것이다.

     

    (다음편 ‘아버지의 죽음’에서 계속)

     

    원본 위치 <http://www.ddanzi.com/blog/archives/32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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