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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 강의

테무진to the칸(5)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by 속 아몬드 2013. 10. 29.

테무진to the칸(5)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2011.02.16.수요일

필독

 

 

intro

사랑하는 독자열분덜, 이제 긴 말 하지 않는다. 저번 편들 안 봤으면 빨리 텨가서 보고 와라.

 

 

1

 

(전편에 이어) 탈출을 결심했다고 해서, 당장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저, 이만 가보겠습니다’하고 어머니 헐룬의 게르가 있는 쪽으로 뛰어가면 어떻게 되겠는가? 테무진은 나이답지 않게 적당한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타이치우드 족이 테무진의 고향과 가까운 오논 강 기슭에 야영하고 있을 때였다. 타이치우드 족은 강변에서 잔치를 벌였다. 몽골족 뿐 아니라 초원 사람들은 여러가지 이유로 잔치를 한다. 제삿날에도 하고, 사냥이나 약탈에 성공했을 때처럼 좋은 일이 있을 때도 한다. 행복한 미래를 기원하며 굿을 할 때도 예외는 아니다.

 

테무진은 잔치판 바로 옆에 서 있었다. 아마 잔치를 꾸며주는 장식품 정도였을 것이다. 아니면 잔치는 부족의 모든 구성원이 함께하는 거니까, 게르들이 텅텅 비워서 그날 밤 테무진을 맡을 사람들이 없어서였을 수도 있다. 밤이 깊어지자 타이치우드 사람들은 하나 둘 자신의 게르로 들어가거나, 술에 취해 널브러졌다.

 


몽골사람들은 한 번 술을 마시면 ‘필름이 끊길 때까지’ 들이붓는 습관이 있다. 이 습관은 훗날 몽골제국의 궁정에 출사하게 된 중국인, 아랍인 학자들을 경악시켰다. 몽골인들은 불과 한 세대도 지나지 않아 유라시아대륙의 황금핏줄이 되었다. 그래서 가난한 초원의 소박(?)하고 거친 습관이 세계 권력의 중심부에 그대로 이식된다. 술잔이 날아댕기고 한 쪽에선 신나게 오바이트하고 있고… 결국 국무회의, 궁중의식 등 모든 모임은 ‘전원 기절’로 끝나게 되어 있다(특히 여자가 술판에 껴 남자들과 함께 고성방가를 지르는 모습에 중국과 아랍 대신들은 아연실색했다.). 타이치우드 사람들도 간이 버틸 수 있는 한계까지 마셨을 것이다.

 

마침 테무진을 감시하고 있던 사람은 약골에 약간 덜 떨어진 소년이었다. 아마 잔치에 끼워주기 뭐했을 테니 테무진이나 잘 감시하고 있으라고 맡겼을 터였다. 기회였다. 테무진이 칼을 쓰고 있지 않았다면 그깟 녀석쯤 상대도 되지 않았을 테지만… 조건은 테무진에게 극도로 불리했다.

 

아마 약골 소년은 테무진의 칼에 연결된 사슬이나 끈을 붙잡고 있었을 것이다. 때를 기다리던 테무진은 소년이 방심하고 있는 틈을 타 순간적으로 칼(에 연결된 구속도구)을 낚아챘다. 그 한 동작을 위해 온 몸을 비틀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곧바로 칼로 소년의 머리를 찍어버렸다.

 

약골 소년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테무진은 몸을 숨길 만한 곳을 찾아 달음박질쳤다. 하지만 말을 타지 않고 도보로, 그것도 칼을 뒤집어쓰고 얼마나 달아날 수 있겠는가. 이윽고 정신을 차린 소년이 소리쳤다. 테무진이 도망쳤다아아…

 

몽골 초원, 측 스텝(steppe)지역은 물이 귀하다. 키가 큰 초목이나 수풀은 언제나 강을 끼고 자라난다. 테무진은 술에 절어 어질어질한 병사들이 자신을 발견하기 전에 오논 강변에 자란 수풀 속으로 숨었다. 그러나 하필 그날따라 달이 너무 밝았다. 테무진은 최대한 몸을 숨기기 위해 물속에 몸을 담갔다. 나무 칼의 부력을 이용해 머리만 내놓고, 일단 수색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몽골초원은 일교차가 엄청나다. 아무리 여름이라도 한밤중의 물 속은 매우 차갑다. 강기슭을 수색하는 말발굽소리, 병사들이 대화하는 소리가 지척에서 들렸을 테니 추위 외에 공포와 긴장도 보통이 아니었을 거다. 그러다가 결국 횃불을 든 남자에게 적발당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는 다름아닌 소르칸 시라였다!

 

소르칸 시라는 이왕 호의를 베푼 거, 테무진을 끝까지 도와주기로 한다.

 

“안심하고 가만히 있어라. 내가 알아서 하마.”

 

소르칸 시라는 동료들에게 소리쳤다.

 

“이봐들! 여기까지 찾아서 없으면 없는거야. 분명히 우리가 못 보고 지나쳤을 거야. 시작했던 곳으로 돌아가 각자 못 찾아본 곳을 다시 수색하자!”

 

그리하여 또다시 수색 삽질이 시작되었다. 소르칸 시라는 테무진이 숨어있는 곳을 눈치껏 먼저 찜하고는 조용히 말했다.

 

“조금만 더 참아라…”

 

타이치우드 전사들이 또다시 수색을 첨부터 시작하자고 할때, 소르칸 시라가 제안했다.

 

“이보슈, 타이치우드 나으리들. 그녀석은 분명이 근처에 있습니다. 말도 없고 칼까지 뒤집어쓴 놈이 도망을 가봐야 얼마나 가보겠습니까? 어두워서 눈에 안 띄는 게지요… 내일 날이 밝고 나서 말을 타고 둘러보면 반드시 잡힐 겁니다.”

 

하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차피 다들 술독에 빠져 자다 일어난 상태라 컨디션도 최악이었다. 병사들은 각자의 게르로 기어들어갔다. 소르칸 시라가 테무진에게 다가가 말했다.

 

“눈치껏 빠져나와 가족들을 찾아가라.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나도 타이치우드 ‘니르운’들 눈치보고 사는 처지인데, 널 도와준 걸 걸렸다간 우리 가족도 큰일난다. 이제부터는 네가 알아서 해라. 혹시 잡히게 되더라도 내가 도와준 얘기는 절대 하지 말아다오.”  

 

이윽고 테무진은 차가운 물 속에 혼자 남게 되었다.

 

 

2

 

계속 물 속에 있다간 체온이 상실돼 인사불성이 될 터였다. 그렇다고 칼을 뒤집어쓴 채로 걸어서 탈출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초원의 속도는 모든 게 말로 통용된다. 말발자욱만 식별할 수 있으면, 말을 달려 사나흘 거리도 얼마든지 추적한다. 걸어서 도망치는 게 가능할 리가 없다.

 

그렇다면 도망가지 말고 숨어있어야 한다. 어디에? 테무진은 나이답지 않게 대담하게도 적들의 게르가 즐비하게 늘어서있는 타이치우드 야영지로 걸어들어갔다. 자다가 오줌 누러 나온 사람 눈에라도 띄면 모든 게 끝장이지만,  어차피 모 아니면 도였다.

 

소르칸 시라는 테무진에게 할 만큼 했지만, 이 상황에서 도와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그밖에 없었다. 테무진은 소르칸 시라 가족의 게르로 뚜벅뚜벅 걸어들어갔다. 난데없는 등장에 일가족은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소르칸 시라는 진심으로 화가 났다. 이젠 정말로 가족이 위험에 처하게 된 것이다.

 

“가족들을 찾아가라고 하지 않았느냐? 여기로 쳐들어오면 우린 대체 어쩌라는 거냐?”

 

아마 소르칸 시라는 어쩔 수  없이 테무진을 타르구타이에게 넘기려고 했던 모양이다. 가장으로선 당연한 결정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가장과 생각이 다른 법이다. 테무진과 친한 친구사이가 된 칠라온, 침바이, 카다안 삼남매는 아버지에게 성을 냈다.

 

“아빠는 테무진한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어어….!”

 

소르칸 시라의 반응은?

 

“아, 알았다… 아빠가 어떻게 해보마…”

 

소르칸 시라는 먼저 테무진의 칼을 벗기고 불에 태워 증거를 인멸했다. 게르의 정 중앙에는 소똥을 연료로 쓰는 화로가 있다. 요즘엔 아래 사진처럼 굴뚝 난로를 많이 쓰는 모양이지만, 실내에 상시 불을 피운다는 점은 동일하다.   

 



삼남매는 테무진을 집안에 숨겨두고 보살폈다. 게르는 생각보다 넓다. 또 몽골인은 원래 시베리아 삼림에서 생겨난 인종이다. 그래서 초원의 다른 인종집단, 즉 타타르족, 돌궐족(투르크, 즉 터키인), 위구르족, 탕구트족(티베트인), 나이만족(Turko-Mongolian, 즉 투르크-몽골에 위구르가 섞여있었다.) 등등보다 나무로 된 가구가 많다(여기서 중요한 것은 핏줄이 초원에 다양하게 흘러들어오고 또 복잡하게 섞이지만, 삶의 논리와 언어 등 문화적인 면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유사했다. 훗날 테무진은 종족 개념이 아니라 ‘문화개념’으로 몽골족을 확장한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겠다.). 숨을 데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는 동안, 타이치우드 전사들은 야영지 일대를 3일 간이나 샅샅이 수색했다. 아마 말로 하루 거리까지는 살펴봤을 것이다. 그런데도 테무진이 없다면 답은 하나다.

 

“우리 중에 녀석을 숨겨주는 놈이 있는 게 분명하다.”

 

그리고는 각 게르마다 가재도구가지 탈탈 털면서 조사했다. 소르칸 시라 가족은 급한대로 테무진을 양털 수레에 싣고 그 위에 양털을 한가득 올려놓았다. 이윽고 병사들이 들이닥쳐 게를를 뒤지더니, 게르 뒷편의 양털수레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혹시 여기 있는 거 아냐?”

 

병사가 양털뭉텅이를 잡아당겼다. 그 결에 테무진의 한쪽 발이 버젓이 튀어나왔다. 몽골의 전통 수레는 작다. 계급이 낮은 솔두스 씨족이 쓰는 수레는 더 초라했을 것이다. 병사들이 둘러싸고 있는데 발이 나왔으면, 그쪽을 ‘힐긋’ 보기만 해도 들키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움직여서 양털을 들썩이게 할 수도 없고…

 

이럴 때일수록 뻔뻔해져야 한다. 이거 웬만한 사람들은 잘 안되는 거지만, 가장은 때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저력을 발휘하는 법이다. 소르칸 시라가 태연을 가장하며 연기했다.

 

“허허 나 참… 이렇게 더운데 양털더미 안에서 버틸 사람이 어딨겠습니까? 쪄 죽지 않을까요? 뭐 들춰보고 싶으면 그렇게 하시던가요…”

 

“음… 생각해보니 그러네.”

“하긴. 나같아도 저 안에 들어가 있으면 죽었겠다.”

 

하지만 테무진은 살았다. 양털 잠바 백 벌을 입고 뙤약볕 아래 수시간을 있었으니, 아마 탈진상태였을 것이다. 병사들이 떠나자 소르칸 시라는 테무진을 꺼내놓고 원망 섞인 말을 한다.

 

“아이구 이놈아… 너 때문에 우리 가족이 뼈도 못 추릴 뻔했다.”

 

그래도 그는 확실한 마침표를 찍어주었다. 말 한 마리를 내주고, 초원에서 가장 귀한 식재료인 새끼양을 잡아 음식을 만들어주었다. 여행중 비상식량을 담을 가죽부대와 수통도 챙겨주었다. 거기다 호신용으로 활과 화살 두 대까지… 이렇게까지 해준 것도 이해는 간다. 테무진이 잘못되면 일가족도 끝장난다. 탈출에 성공하도록 돕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마침내 완벽한 기회를 잡은 테무진은 그대로 말을 달려 오논 강 상류로, 상류로 올라갔다.

 




 

 

3

 

이 시점에서, 학자들이 몽골역사 최대의 논쟁을 벌이는 부분을 이야기해야겠다. 대체 테무진이 포로생활을 한 기간이 얼만큼이냐는 거다. 어쩌면 테무진은 10년 가까이 노예생활을 했을 수도 있다. 이 가설이 맞다면, 아마 타이치우드 족은 테무진의 정신과 의지가 완전히 부서졌다고 판단하고 ‘방생’했겠지. 혹은 장장 10년 만에 가까스로 탈출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테무진이 칼을 쓰고 살지는 않았을 거다. 그 채로는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가 없으니까. 대신 ‘포로’가 아닌 ‘노예’생활을 했으리라.

 

이런 가설이 제기되는 이유는 테무진이 너무 ‘늦게’ 태어났기 때문이다.

 

테무진의 출생연도엔 많은 설이 있다. 필자는 정설에 가까운 대체적인 견해에 따라 1162년 설을 기준으로 이 시리즈를 쓰고 있다. 그런데 예수게이가 헐룬을 납치한 때는 1153년이다(이 연도가 정설에 가장 가깝다.). 헐룬은 테무진을 낳은 후, 2~3년 격차로 동생들을 낳는다. 그러니까 헐룬의 자궁과 난자, 예수게이의 정액은 의학적으로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는 얘기다.

 

그럼 납치에서 출산까지, 10개월의 임신기간을 고려한다 해도 발생하는 약 8년간의 공백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예수게이가 헐룬을 붙잡아놓고 게르 안에서 밤새 베개싸움이나 하진 않았을 것이다. 육두불패의 거사분들께 물어보고 싶다. 과연 그러고 놀고 싶은지…

 


깔깔~ 날 납치하다니 이 짐승!

 

테무진의 노예생활이 길었다는 가설은 곧, 테무진이 1160년대생이 아니라 1150년대생이라는 가설과 짝을 이룬다. 테무진이 실제보다 5~10년 늦게 태어난 걸로 설정해, 노예로 산 5~10년의 시간을 고의적으로 날려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정말 일부 학자들이 제기한 의혹처럼, 역사의 기록자들이 테무진의 명예를 위해서 포로(혹은 노예)생활을 짧게 각색한 걸까? 무명의 <몽골비사> 저자, 인류 최초의 ‘세계사’를 쓴 당대 세계최고의 문필가 라시드 앗 딘 등의 사람들은 몽골제국이 지배하는 세계를 살았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오십보 백보다. 해당 기간이 1년이건 10년이건, 포로(노예)생활을 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몽골 역사에는 테무진이 눈물을 줄줄 흘리는 모습이나 여자들(어머니와 부인)에게 쩔쩔매는 장면, 심지어 가끔 보이는 비겁함까지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 ‘위대한 마초’를 위한 기록치고는 너무나 솔직하다. 어차피 흑역사를 쓸거면, 굳이 뭐하러 그 기간을 줄이냐는 거다.

 

따라서 이상의 가설은, 어디까지나 한번 생각해봄직한 의혹의 수준을 벗어나기 힘들다. 오컴의 면도날을 대입해보자 : 왜 사가들은 A라고 기록했을까? 두둥~ 그야 사실이 A였으니까. - 끝 -

 

헐룬은 가난한 몽골족 동네에 잡혀오고 나서 영양상태가 급격히 나빠졌을 것이다. 심적으로도 공포와 절망의 시기였다. 신체의 임신능력이 일시적으로 정지했을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예수게이는 헐룬 납치 후 정력적으로 세력을 불리고 있었고, 타타르족과 싸우고 약탈과 사냥을 나서고 용병 노릇을 하느라 집에 머무는 기간이 매우 적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은 여러 기록들이 충분히 암시하고 있다. 따라서 집안형편이 안정되기 전의 7~8년 동안 헐룬이 임신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크게 이상할 건 없다.

 

그러니 우리는 더 이상 고민하지 말고 이야기를 계속해보도록 하자.

 

 

4

 

테무진은 오논 강 상류의 개울가, 작은 언덕에서 마침내 꿈에 그리던 가족과 재회했다. 얼마나 기뻤을까… 그러나 한가로이 감격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타이치우드족이 언제 또 쳐들어올지 몰랐다. 테무진 가족은 안전한 곳을 찾아 북으로 올라간 끝에 부르칸 칼둔 기슭에 게르를 쳤다.





다행히도 타이치우드 족은 테무진 가족의 걱정만큼 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유목민들은 야영지를 자주 옮겨야 한다. 테무진 따위를 다시 신경쓸 겨를이 없었을 수도 있다. 이만하면 본때를 보였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테무진이 돌아오고 카사르와 벨구테이도 자랐다. 하지만 테무진 가족은 여전히 가난했다. ‘육고기’는 충분히 먹을 수 있었지만, 그래봐야 들쥐와 ‘타르바가’의 고기였다. 여전히 가난했단 얘기다. 타르바가란 토끼보다 큰 거대설치류로, 늑대와 여우를 피해 땅굴을 파고 숨어 사는 동물이다.

 

이 분이 타르바가(Tarvaga)

 

여기서 잠깐. 맛은 그렇다치고, 같은 양의 고기를 먹으면 영양엔 문제가 없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 전혀 그렇지 않다. 당시의 몽골족은 100% 가까운 육식을 했다. 모든 영양을 동물에 의존했다. 여기서 가축과 사냥감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양을 예로 들면, 몽골 초원엔 수천 종의 풀이 자생하는데 양은 그중 500종 이상의 풀을 먹는다. 그러다보니 몸 안에 각종 비타민과 미네랄이 가득차게 된다. 그래서 몽골엔 양고기만 먹어도 병에 안 걸린다는 말이 있다. 맛과 상관없이 양고기는 최고급 식품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양털은 게르의 벽의 재료이며, 각종 방한장비를 마련해준다.

 

염소와 소, 야크도 역시 방목을 하고 목영지를 수시로 옮기기 때문에, 다양한 풀을 먹는다. 한정된 먹이를 먹도록 진화된 야생동물의 고기와는 달리, 단순히 칼로리로 따라잡을 수 없는 영양분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가축은 젖을 생산한다. 젖은 칼슘이 풍부하며 유산균을 함유한 요구르트, 탄수화물 대신 알콜 당을 즉각적으로 공급해줄 수 있는 술로도 만들 수 있다. 덧붙여 소와 야크의 똥을 연료로 쓰는데, 소와 야크만 충분히 갖고 있었도 난방 걱정 없이 겨울을 날 수 있다.

 


 

또한 가축의 몸에는 지방이 많다. 몽골 음식은 지금도 엄청나게 느끼하다. 겨울날씨가 영하 30~40도까지 내려가고, 한여름에도 밤에는 기온이 수직으로 떨어지는 초원에서 살아가려면 몸에 지방을 열심히 저장해놔야 한다. 가축은 자잘한 사냥감들과는 달리 필요할 때 대량의 피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물뿐만 아니라 소금도 부족한 초원에서 피는 훌륭한 식염수 역할을 한다. 그러니 테무진 가족과 다른 초원사람들의 삶의 질은 엄청난 차이가 났다. 

 

테무진 일가는 약간의 재산을 모으는데 성공했다. 9마리의 말이 생긴 것이다. 숲 속에는 쓸만한 털가죽을 가진 동물이 많았다. 여우와 담비의 모피 등은 꽤 괜찮은 값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도 말 9마리를 마련할 때까지 얼마나 고생을 했을지, 우리는 어렵잖게 예상할 수 있다.

 

초원에서는 보통 일인당 십수마리에서 수십마리의 가축이 딸려 있었다. 말만 해도 한 사람이 한 두 마리의 예비마는 챙길 수 있었다. 테무진 가족은 ‘코아그친’ 할머니까지 총 9명이었다. 이젠 걸어다니지 않아도 되었지만, 역시 가난한 건 마찬가지였다.

 

어느날, 벨구테이는 타르바가를 잔뜩 사냥해 말 위에 주렁주렁 걸어놓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웬 놈들이 몰려오더니… 전 재산의 대부분인 말 8마리를 홀랑 주워다 갖고 가버리는 게 아닌가? 식구들은 눈으로 뻔히 보고도 당할 수밖에 없었다. 말을 게르에 바짝 붙여 메어놓는 것도 아니고, 멀찌감치 풀어놓아 풀을 뜯게 하는데 그걸 순식간에 몰아서 훔쳐가면 무슨 수로 당하겠는가. 저지하고 싶어도 뛰어서 쫓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말 8마리. 테무진 가족에겐 잃을 수 없는 자산이었다.

 

 

5

 

마침 남은 한 마리의 말고삐를 쥐고 있던 벨구테이가 화가 나 소리쳤다.

 

“이 쉽새들이… 내가 가서 찾아온다!”

 

원체 겁이 없는데다가 힘에 자신이 있던 카사르가 나섰다.

 

“됐어. 내가 갔다올게. 내가 너보다 낫다.” 

 

카사르는 평생 ‘산 사람하고는 싸워서 지지 않는다.’고 소리치고 다닐 정도였다. 몽골족은 무속신앙을 갖고 있었다. 귀신의 존재를 믿었기에 이런 표현을 썼다. 사실 카사르라는 이름도 ‘맹수’란 뜻이다. 원래 이름은 ‘주치’지만, 자라면서 카사르라는 별명이 붙었다. 별명이 본명을 대체하게 된 경우다(테무진의 첫째아들 ‘주치’와 구분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카사르와 벨구테이는 서로 자기가 간다고 난리였다. 테무진이 동생들의 말싸움을 간단히 정리했다.

 

“그만들 해라 이거뜰아. 내가 간다.”

 

테무진은 마지막 남은 한마리 말을 타고 말발자욱을 따라 추적을 시작했다. 강도떼는 아마 예닐곱명, 최소 서너명이었을 터. 게다가 어른들이었을테니, 테무진에게는 목숨을 건 추적이었다. 그러나 8마리 말은 너무 중요했다. 그렇게 3일 밤낮을 달리다가 4일째 되는 날 아침, 강도들이 지나간 골목에서 웬 소년이 말젖을 짜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소년의 모습을 보아하니 때깔도 괜찮고 옷도 고급이다. 있는 집 자식인 모양이다. 

 

“이봐 친구, 혹시 ‘시라가모리’ 여덞 마리가 지나가는 걸 못 봤나?”

 

시라가모리의 ‘시라가’란 거세했다는 뜻이다. 몽골에서는 전통적으로 거세한 수말을 승용 및 군용으로 썼다. 수컷의 근육에 암컷의 온순함, 끈기를 지녔기 때문에 훈련하기도 좋고, 지구력도 강했다. 게다가 발정이 나서 발광할 일도 없었다. ‘모리’란 말을 뜻하는 초원의 언어다.

 

“아… 오늘 새벽 해뜨기 전에 지나가던데? 왜?”

 

테무진이 사연을 설명해주었다. 두 또래는 금세 친해졌다. 소년은 의기양양하게 자기소개를 한다.

 

“내 이름은 ‘보르추’야… 혹시 이 일대에서 부자로 유명한 ‘나코’라고 들어봤나? 내가 그 양반 아들이야. 그것도 외아들이지. 후훗.”

 

“아, 그러냐 이자식아…”

 

보르추는 재수없게 자랑만 하진 않았다. 그는 강도들이 지나간 길을 친절히 가르쳐 주었고, 테무진에게 자신의 말을 빌려주었다. 그렇지 않으면 테무진의 말은 이미 지쳐서, 예비마와 함께 이동하는 강도들에게 점점 뒤쳐질 게 뻔했다. 그것도 모자라서 그는 아예 테무진을 따라나서기로 한다.

 

“우리 이렇게 된 바에 앞으로도 친한 친구로 지내자! 같이 가서 네 말들을 찾아오자.”

 

보르추… 앞으로 많이 등장할 인물이다. 보면 알겠지만, 즉흥적이고 단순한 성격을 갖고 있다. 강도 추적은 테무진에겐 자신과 가족의 운명을 건 투쟁이었다. 반면 보르추는 고생을 안하고 자라서 그런지 모험에 뛰어들고 싶었던 모양이다. 확실히 부잣집 외아들답게, 화끈하고 낙천적이었다.

 

두 사람은 곧장 의기투합해서 말발자욱을 따라 3일간 강도들을 추적했다. 그러나 드디어 저녁쯤에, 불을 피우고 둥그러니 앉아있는 강도들을 발견한다. 거세마들은 캠프파이어 근처에서 풀을 뜯고 있었다. 어치피 싸우는 건 승산이 없었다. 도둑당한 말들을 다시 훔쳐 튀는 게 상책이었다


 


적극적으로 위험에 뛰어드려는 보르추와, 자기 때문에 애꿎은 또래를 다치게 하기 싫었던 테무진의 대거리는 무척 재미있다.

 

“보르추, 넌 여기 가만 있어라. 내가 말들을 끌고 올 테니까.”

 

“아니 도와주겠다고 여기까지 왔는데, 가만 있으라는 게 말이 되냐?”

 

결국 두 친구는 함께 달려가 잽싸게 말들을 낚아 전속력으로 튄다. 아마 말에서 내린 채 무장을 풀고 앉아있던, 거기다 아마 술도 적당히 취했을 강도들은 곧바로 대응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어떻게 훔친 말인데… 강도떼는 서둘러 말에 올라 두 소년을 추격했다. 장대 올가미를 든 강도가 가장 가까이 따라오고 있었다. 아마 올가미로 말 한 마리라도 더 회수하려고 했을 것이다.

 

보르추가 소리쳤다.

 

“테무진! 활과 화살을 나한테 줘. 내가 저놈을 쏴버리게.”

 

“됐다. 나 때문에 여기까지 왔는데 행여나 네가 다치게 하면 내가 뭐가 되냐. 내가 쏠 테니까 넌 빨리 도망치고 있어라!”

 

테무진은 보르추에게 활을 건네지 않고 그대로 뒤를 돌아 화살을 날렸다.

 

 

테무진의 공격 덕에 강도떼와 거리를 벌릴 수 있었다. 이후 두 소년과 강도들은 몇 시간동안 쫓고 쫓긴다. 결국 어두운 밤이 되자 강도들은 추격을 포기하고 사라졌다.

 

테무진과 보르추는 다시 3일을 이동한 끝에 처음 만났던 곳에 다다랐다. 테무진은 보르추에게 적절한 보상을 하고 싶었다.

 

“네가 아니었으면 절대 말을 되찾을 수 없었을 거야. 감사의 뜻으로 내 말을 줄게. 자, 몇 마리가 적당할까?”

 

말 몇 마리는 당시 테무진에게 기꺼이 목숨을 걸 만한 보물이었다. 반면 말, 낙타, 양, 소, 야크, 염소가 셀 수도 없이 많은 부잣집 아들에겐 별볼일 없는 물건이었다. 오히려 자신이 겪은 스릴 넘치는 모험의 가치를 훼손시키기나 했을 터.

 

“야, 내가 몇 번을 말하냐. 그 유명한 부자아저씨 나코가 내 아빠라고. 나 외아들이라니까. 그 재산이 다 내껀데 너한테 말 몇마리를 닥닥 긁어 받아야겠냐? 날 뭘로 보고… 우리 집에 가서 아빠한테 인사도 하고 먹을거나 좀 싸가.”

 


 

자식이 가출하면 부모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먼저 걱정한다. 비행청소년짓 따위 얼마든지 해도 몸성히 있기만 해다오… 그러다가 자식의 안전이 확인되면, 비로소 화가 폭발하는 법. 우리의 부자양반 나코도 그랬다. 그는 말도 없이 실종된 아들과 재회한 감격이 끝나자마자 보르추를 실컷 혼냈다.

 

부잣집 외아들이 흔히 그렇듯, 보르추는 아빠의 훈계를 귀담아듣지 않았다. 대신 테무진에게 마유주, 젖(물론 가죽부대와 수통까지 세트로)에다가 즉석에서 두 살바기 새끼 양까지 잡아 마련한 최고급 고기를 바리바리 싸 주었다. 테무진은 보르추와 헤어지고 다시 3일 밤낮을 달려 집에 도착한다. 이때 테무진의 나이 16세(한국 나이로 17세)였다.

 

 

6

 

예수게이가 죽은 지 7년이 지났다. 서기 1178년이었다. 테무진 가족은 조금씩이나마 먹고사는 형편이 나아지고 있었다. 테무진은 더 이상 포로나 노예도 아니었고 음식의 질이 좋진 않았지만 어쨌든 결식아동도 아니었다. 여전히 고아였지만, 가장의 역할을 어설프게나마 해내고 있었다.

 

테무진은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결혼하고 싶었다. 그는 7년전 결혼을 약속한 보르테의 소식이 궁금했다. 보르테의 옹기라트족은 미녀 많고 부유한 부족. 과연 스펙 제로의 남편에, 시어머니는 둘에, 시동생은 다섯이나 있는 가난뱅이 시댁에 기꺼이 시집올 여자가 있을까?

 


 

게다가 보르테와 함께 있었던 건 불과 며칠이었다. 거칠고 불안정한 초원에서 한번 혼약을 맺었다고 언감생심 여필종부, 백년해로를 바라는 건 거의 범죄였다. 또 보르테는 당시 17세, 한국나이로 18세였다. 결혼적령기의 피크를 지나는 시점이었다. 새신랑이 생기지 않았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더군다나 테무진은 데릴사위기간을 통으로 날려버렸다. 처갓집에 들어가 수년간 노동을 해서 신부 데려오는 값을 몸빵으로 결재하는 건데, 이제와 공짜로 달라는 건 도둑놈 심보다.

 

초원에선 남자나 여자나, 결혼적령기 이후엔 성인으로 쳤다. 성인여성은 신랑을 자기 뜻대로 선택할 수 있었다(재혼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운 나쁘게 납치당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보르테는 만에 하나, 테무진을 기억하며 혼사를 거절했을 지도 모른다.

 

테무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장인 데이 세첸을 찾아가보기로 결심한다. 마침 옹기라트족은 케를렌 강 하류의, 강물의 습기를 머금은 축축한 초원지대에 야영하고 있었다. 테무진은 벨구테이와 함께 신부를 찾아 케를렌 강을 따라 내려갔다. (이쯤 되면 독자들은 몽골초원이 그렇게 넓다는데, 어째 등장하는 지명이 그 강이 그 강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들 법도 하다. 몽골 초원엔 장애물이 없기 때문에 강줄기가 엄청나게 길다. 케를렌 강의 길이는 무려 1200Km가 넘는다. 그리고 오논 강과 케를렌 강과 툴라 강은 발원지 부르칸 칼둔을 중심으로 각기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가기 때문에, 하류로 내려갈수록 전혀 다른 지역이 된다.)

 

데이 세첸은 먹튀 사위 테무진을 의외로 반갑게 맞았다.

 

“어이구! 자네 타이치우드 형제들한테 붙잡혀 고생한다는 얘길 듣고 내가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모르네. 이젠 자넬 봤으니 안심이네그랴…”

 

데이 세첸의 반응도 이해가 간다. 노처녀가 되어가는 딸내미를 치우지 못하고 있었으니… 놀랍게도 보르테는 테무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왔어?


 

(다음편 ‘달콤한 인생’에서 계속)


원본 위치 <http://www.ddanzi.com/blog/archives/32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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