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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돌아가는 꼬라지

민중의 큰 어른 백기완 선생 박근혜 정권 시절 줄곧 길바닥에...

by 속 아몬드 2021. 2. 18.

우선 이 얘기부터 해야겠다.

박근혜 정권 시절 촛불집회는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나서 시작된 게 아니다.

 

2013년 당선 직후 총체적 관권 부정선거라는 게 밝혀지고 그 해 6월 부터 촛불집회는 시작되었다.

2013년 6월 부터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전 까지는 관권 부정선거를 개탄하는 시민들이 매주 토요일 시청앞에 모여 촛불을 들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집회의 규모가 커졌고 부정선거를 개탄하며 '박근혜 하야'를 외치던 촛불이 세월호 책임과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촛불로 변화했다.

 

그러니까...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2016년 10월 최순실 게이트 이후 촛불은 다된밥에 숟가락 얹는 수준이었다. 

아무도 관심없었겠지만 2013년 6월 부터 촛불집회는 매주 토요일 빠짐없이 이어졌다.

 

그 촛불집회에 줄곧 백기완 선생이 계셨다.

어떻게 이룩한 직접민주주의 인데... 관권 부정선거라니 속에서 천불이 나셨을 게다. 그래서인지 4.19세대가 집회의 주류를 이루었다. 대선불복 프레임이 무서워였을까 유명 정치인은 모습을 모이지 않았다. 위 사진은 2013년 겨울의 사진이다. 이때는 집회 참여자가 매우 적었고 고작 200여명이 모일 때도 많았다.

 

 

 

 

 

백기완 선생의 부고를 접하고 수 많은 정치인들이 그와 함께 했다고 앞으로도 그의 정신을 기리겠다고 앞다투어 SNS에 자기고백을 쏟아 냈다. 2013년 6월 부터 2017년 3월 까지 그 긴긴 촛불의 세월 동안 백기완 선생의 옆에 누가 있었을까?

위 사진은 2014년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촛불집회가 탄력을 받은 날이고 정동영이 처음으로 모습을 보인 날이다. 그 이후로 보지 못했다.

 

 

 

아이들이 '수장 당했다'는 분노에 많은 시민들이 촛불집회에 참여하게 되면서 

'부정선거 박근혜 하야' 구호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으로 변했다.

 

세월호 국면의 촛불 때에도 줄곧 백기완 선생이 맨 앞열에 있었다.

 

 

 

위 사진은 2014년 9월 13일

유민 아빠 김영오씨의 단식투쟁이 한계에 다다른 시점이었고

일베 버러지들이 광화문에 와 피자와 햄버거를 시켜 먹는 이른바 '폭식투쟁'이 있던 날이다.

이날도 백기완 선생이 자리했고 못 볼 꼴을 보셨다.

 

 

 

이정희 김재연은 2013년 부터 촛불집회에 자주 모습을 보였다.

 

 

 

2013년 6월 부터 2017년 3월 까지 촛불집회는 이어졌다. 

3년 9개월 동안 매주 토요일 약 190여 회 촛불집회가 있었던 것이다.

190여회... 위 사진처럼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는 100여명 밖에 모이질 못했다. 그런 때도 백기완 선생이 있었다.

 

백기완 선생의 부고 소식을 접하고 수많은 청치인과 지식인들이 그의 뜻에 함께 했다고 고백하는 SNS를 보고 헛웃음이 나왔다. 2016년 겨울 최순실 게이트로 촛불집회는 다된밥이 되었고 세월호 국면에도 한 번을 나오지 않던 인간들이 그제서야 집회에 나와 영웅 행세를 했었다. 그제서야 기어나와 영웅행세를 한 가수도 있었다. 누구라고 얘긴 안 하겠다. 그런 인간들이 백기완 선생을 들먹이며 슬퍼하는 꼴을 보고 있자니 웃기지도 않아 몇자 적었다.

 

위 모든 사진은 필자가 직접 찍은 사진이고

백기완 선생을 찍으려고 찍은 게 아니다. 가끔 집회를 기록하고자 스케치 한 것인데

백기완 선생이 매번 집회에 참석 하시니 그의 모습이 자주 담겼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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