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논평] 노동법 흔들고, 저임금·실업 확대 가져 올 대법원 판결
노동자에게 유리한 대법 판결?
지난 12월 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내놓은 통상임금 판결이 논란이다. 판결 이후 ‘(일부) 상여금은 통상임금이다’라는 보도가 언론사 속보로 뜨면서 이 판결이 마치 노동자에게 우호적인 판결인 것처럼 알려졌다.
하지만 이후 판결문 전체가 언론에 알려지면서 많은 노동법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이 100% 노동자에게 불리한 판결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번 판결의 요지는 ‘① 일부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속한다, 단 (매우 까다로운) 조건에 부합해야 한다 ② 노사가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합의해도 법적으로는 무효지만, 회사 사정이 어려우면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이다.
과연 이 판결이 일부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노동자에게 유리한 판결일까? 답은 ‘100% 아니다’이다. 오히려 이번 판결은 그나마 노동자에게 우호적이었던 이전 대법 판결을 뒤집을 뿐만 아니라, 노동법 자체의 근간을 흔들고, 나아가 노동시장 측면에서는 임금 하락과 일자리 감소라는 부정적 영향도 가져올 수 있다. 이 판결이 갖는 문제점을 살펴보기 이전에 우선 통상임금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자.
통상임금이 뭐길래?
임금은 일을 하고 받는 노동의 대가이지만, 실제로 우리가 받는 임금인 ‘월급’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월급명세서에 달랑 기본급만 찍히거나 아예 명세서 따윌 못 받는 경우가 아니라면, 많은 경우 그 월급명세서에는 각종 수당과 간혹 ‘보너스’가 찍힌다.
문제는 야근이나 출산휴가 수당을 상정할 때 월급명세서에 찍힌 내용 중 어떤 항목까지 수당 산출의 기준으로 삼을 것인가이다. 예를 들어, 지난달 야근을 10시간 했다고 하면, 기본급이 아니라 ‘통상임금’을 시간급으로 환산한 다음, 이의 1.5배해서 10시간 분을 받아야 한다. 이 경우 교통비 등 매달 지급되는 각종 수당은 야근수당 산정의 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에 포함되는가? 석달에 한번 받는 보너스는? (넉달이든 두달이든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휴가나 김장철에 주는 돈은? 그럼 연말에 돈 많이 벌었다고 주는 성과급은?
잘 알다시피 한국의 임금체계는 기본급 비중이 적고 각종 수당과 야근이 많기 때문에 통상임금을 어떻게 산정하냐에 따라 왔다 갔다 하는 임금의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재계가 추산하기로는 무려 38조에 달하고, 노동연구원 추산은 22조다. GM 대우 한 개 기업만 8천억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통상임금이 어떻게 결정되냐에 따라 자본과 노동 사이에 갈리는 희비의 규모가 엄청나다.
대국민 조삼모사 판결
앞 서 이야기했듯이 대법원은 일부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속하지만 일부는 속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근로기준법은 임금을 최소 한달에 한번 이상은 지급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재계는 이 한달 규정에 해당하지 않는 것, 그러니까 석달이나 넉달 혹은 일년에 한번 주는 것은 임금이 아니기 때문에 통상임금에서 배제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법원은 이 한달 규정이 물리적 1개월이라기 보다는 주기적 지급, 즉 정기성의 의미라고 해석했다. 그에 따라 석달이나 넉달마다 주는 상여금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정기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지급하는 것이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이번 대법 판결도 임금 지급 주기에 대해서는 이전 판결과 크게 다르지 않다. 즉, 그것이 한달이든 석달이든 주기적으로 주는 것이면 통상임금이라고 판결한 것이다. 하지만 ‘모든 노동자’에 대해서는 보다 엄격한 기준을 제시했다. 즉 재직 노동자뿐만 아니라 지급 기간 내 퇴직한 노동자에게도 일할(日割) 지급하지 않으면 통상임금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너스가 3월, 6월, 9월, 12월 지급된다고 가정했을 때, 2월에 퇴직한 퇴직자에게 3월 지급예정인 보너스의 2/3를 지급하지 않으면 ‘모든 노동자’에게 지급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통상임금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정기 상여금뿐만 아니라 하계 휴가비나 각종 복리후생비에도 해당된다. 여름에 한 번 주는 하계 휴가비를 한겨울인 12월에 퇴직하는 이에게 1할 계산해서 지급하지 않았으면 정기적이지만 일률적이지 않아서 통상임금이 아니라는 것이다.
독자들 중 12월에 퇴직하면서 이듬해 받을 하계 휴가비의 일부를 일할해서 받는 경우를 본 경우는 없을 것이다. 일반 보너스는 물론 김장보너스나 명절 보너스, 체력 단련비, 생일 보너스, 자녀들 학비도 모두 그렇다. 결국 거의 모든 정기 상여금과 수당이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 법원은 일부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했지만, 결국 노동자에게는 한 푼도 주지 말라고 판결한 것이다.
노동법 근간 무너뜨린 대법의 ‘정의와 형평’
이번 판결은 기존 통상임금에 대한 법원의 판결을 완전히 뒤집는 것을 넘어, 노동법의 근간을 흔들어 놓는다는 점에서도 매우 심각하다.
노동법은 최소한의 노동조건 보장을 위한 강행법규다. 이 말은 당사자 간에 합의를 이루었다고 해도 법이 정한 기준에 미치지 못 하면 그 합의 또는 계약은 무효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노동자(또는 노조)와 사용자가 임금을 시급 4천원으로 합의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최저임금보다 낮은 수준이기 때문에 그 계약은 무효가 되고 최저임금이 정한 시급을 적용하게 된다. 이는 법정수당과 퇴직금 등 모든 노동조건에 해당한다.
그런데, 대법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는 노사합의가 무효임이 명백하게 선언하기 이전에 노사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신뢰한 상태에서 이를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는 합의를 하고 이를 토대로 임금 등을 정하였는데, 근로자가 그 합의의 무효를 주장하며 추가임금을 청구할 경우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재정적 부담을 떠안게 될 기업에게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 자체가 위태롭게 된다는 사정이 인정된다면, 추가임금의 청구는 신의칙에 반하여 허용되지 아니한다’고 판결하였다. 즉, 단체협약으로 통상임금 범위를 정한 것은 근로기준법 상 임금에 관한 강행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무효지만, 법(이번 판결)이 정한 통상임금에 따라 임금 지급을 요구하면 회사의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정의와 형평’의 관념에 비춰 소송을 금지한다는 말이다.
이는 대법 내에서도 논란이 된 것인데, 대법관 이인복, 이상훈, 김신은 이에 대해 ‘근로기준법의 강행규정성을 인정하면서도 신의칙으로 그 강행규정성을 배척하는 다수의견의 논리는 너무 낯선 것으로 당혹감마저 든다. 그러나 거듭 살펴보아도 그 논리에서 합리성을 찾을 수 없다’, ‘사용자의 경제적 어려움도 근로자의 권리를 희생시키는 근거가 될 수 없다. 사용자의 경제적 어려움은 근로조건의 설정과정에서 근로자의 이해와 양보를 구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을지언정 이미 정해진 근로조건에 따라 사용자가 이행하여야 할 법적의무를 면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그 동안 기껏 연봉 몇 천만원에 불과한 노동자 파업에 대해 수백억의 손배 지급을 명령했던 법원이 ‘정의와 형평’의 이름으로 기업 사정이 어려우면 노동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판결한 것이다.
임금과 일자리 감소 불러 올 대법 판결
통상임금 논란이 불거진 것은 기형적 임금 구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에서 실시하는 사업체노동력조사에 따르면 전체임금에서 정액급여가 차지하는 비중은 77.7%고, 초과급여가 5.7%, 특별급여가 16.6%다. 사업체노동력조사는 매월 지급되는 각종 수당을 정액급여로 포함시킨다는 점을 감안할 때, 기본급 비중은 77.7%보다 더욱 낮다.
임금구조를 사업체규모별로 살펴보면, 규모가 커질수록 정액급여 비중은 더 낮아지는데, 300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정액급여 비중이 67%에 불과하다. 대기업의 임금 수준이 높지만, 이는 기본급의 차이보다는 각종 수당과 보너스 등의 특별급여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 자료: 고용노동부, 사업체노동력조사(2012년, 사용근로자 5인 이상)
낮은 기본급 구조는 노동시간에도 영향을 준다. 김유선에 따르면, 각종 수당과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킬 경우 2012년 5인 이상 사업체 상용직 노동자가 정규노동시간에 받은 시간당 임금은 17,924원이고 연장노동을 통해 받은 시간당 임금은 14,163원이다. 근로기준법 상 연장노동 수당을 1.5배를 주도록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0.8배를 준 셈이다. 오히려 정규노동시간 임금보다 적다. 각종 수당이나 보너스 비중이 큰 300인 이상 대기업의 경우는 더 심하다. 연장수당 시급이 정기노동시간 시급의 64%에 불과하다. 1.5배는커녕 0.5배에 가깝다.
위의 계산은 임금을 단순히 실노동시간으로 나눈 것으로 유급휴일을 고려하고 않고 있다. 유급휴일을 100% 지급한다고 가정하고 계산해도 초과노동에 지급되는 임금은 통상임금의 95%, 대기업의 경우 77%에 불과하다.
※ 자료: 고용노동부, 사업체노동력조사 (김유선(2013)에서 재인용, 정책+특별급여(2)는 필자 계산)
※ 정액+특별급여①은 정액+특별급여를 실근로시간으로 나눈 시간당임금이며 정액+특별급여②는 유급휴일을 소정근로시간에 포함해서 계산한 시간당임금
이런 임금체계에서는 사람을 새로 채용하는 것보다 되도록 적은 인력으로 장시간 노동시키는 게 훨씬 이문이 남는다. 노동시간은 늘고 고용은 줄어들 가능성이 큰 임금 구조다.
이번 대법 판결은 노동시장, 특히 기업들에게 저임금 장시간 노동, 신규 채용 감소가 오히려 이득이 되는 이러한 임금 구조를 유지·심화하라는 신호와 허가를 내 준 셈이다. 이미 경총에서는 임금체계를 성과급 중심으로 전환해 통상임금을 더욱 낮추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공교롭게도 박근혜 당선 1주기를 단 하루 앞 둔 날, 대법원은 노동법의 근간을 흔들고, 저임금과 실업 확대라는 부정적 영향을 무릅쓰고 ‘정의와 형평’의 이름으로 자본의 이익을 보호하는 판결을 내렸다. 한국 사회의 노동자 서민은 참 안녕하기 어려운 시절이다.
2013년 12월 23일
노동당 정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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